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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재정학

기획재정부는 월간 재정동향 보고서를 통해 1∼9월 통합재정수지 27조 원, 관리재정수지 57조 원 적자라는 결과물을 지난 8일 국민에게 보고했다. 통합재정수지에는 현재 대체로 납입자가 많은 인구 구조상 흑자일 수밖에 없지만, 조만간 급격한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되는 4대 보장성 기금이 포함되기 때문에 실제 재정운용의 성적표는 관리재정수지 57조 원 적자라는 수치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로 심각한 결과다.

올해 경제 상황과 세수 수입 추계상 재정운용의 목표와 재정건전성 전망치의 달성이 어려워 보이는 만큼 정부와 재정 당국의 각성과 정책 대전환을 촉구한다.

먼저, 재정건전성 유지의 필요성이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증가는 크게 재정 위험(fiscal risk)의 증가와 심각한 세대 간 불공평성을 일으키는 문제로 구분할 수 있다. 거시경제 시스템은 예상하지 못하는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으며 어느 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디폴트는 급속도로 확산돼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때 위기 확산을 막아주는 완충제인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외부적인 충격과 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이 드러나 있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재정 여력의 유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재정적자와 채무 증가는 현 상황에서 청년세대 착취를 넘어서 미래세대 학대(intergenerational abuse)의 문제를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개인에게 부채는 금융을 통해 융통하면 되지만, 국가의 경우는 소비의 세대와 상환 또는 이자 부담의 세대가 후생의 차이를 겪는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 등 대부분의 재정 제도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라는 대전제 아래 짜인 제도로, 미래세대가 현재세대보다 부유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국가가 세대 간 소득 재분배를 통해 전 세대로 부(富)를 이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성장과 인구 감소, 고성장기에 형성된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미래세대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 총예산의 10%에 이르는 재정적자라는 것은 정말 몰염치한 정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채무 40%도 이미 많은 만큼 현재세대가 더 나은 재정 상태를 미래세대에 남겨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 운용의 방향에 대해서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재정정책은 그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한 구성 요소로 작동하며 최종적인 경제정책을 위해 조율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다소 후퇴하더라도, 또 내년도 예산안처럼 슈퍼예산으로 확장 재정을 추진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경제 운용의 원칙이 추구된다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서 경제 혁신을 위한 기업가 정신의 확산, 정부·기업 관계의 근본적인 개혁, 공공부문의 개혁과 혁신을 위한 노력은 제로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이런 상황에서 신산업 분야에 대한 재정 투입은 공공부문의 규모만 키울 뿐 민간투자와 기업활동을 숨 막히게 한다. 혁신성장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정부 역할의 재조정, 임의적인 규제 권한의 축소, 규제 완화와 개혁, 공공부문의 축소 없이는 재정적자와 공적자금 투입이 기재부의 설명처럼 확대 균형으로 전환될 리 없다. 정책 당국은 지금 재정건전성과 경제정책을 대전환하지 않으면 미래세대,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