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간기업 경영권에 개입하려는 정권의 시도가 너무 집요해 그 배경에 의구심이 들 정도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문 대통령 선거 공약이긴 하지만, 당선이 곧 모든 공약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칫 기업도 연금도 망칠 위험성이 큰 데다, 현 정권 들어 국민연금 경영진의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이 현저히 저하된 상황에선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또 한 발 나갔다. 연기금의 기업 경영권 침해를 견제해온 ‘5% 룰’ 무력화에 나섰던 국민연금이 13일 공청회에서 액션 플랜인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 그 내용이 심각하다. 배당 등에 문제가 있거나,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스튜어드십 코드 대상에 넣기로 했다. 개선 요구에 계속 불응하는 기업에 대해선 임시주총을 열어 이사(理事) 해임 주주 제안까지 가능하게 했다. 특히 ‘법령상 위반 우려’ 기준으로 ‘국가기관의 1차 조사 결과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를 규정했다. 즉, 국민연금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거나,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이 검찰에 고발만 해도 해당 기업 경영진을 해임 대상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을 무기로 경영 개입에 나선다면, 정권 코드를 살피느라 기업 효율성이 떨어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김성주 공단 이사장의 총선 출마 행보에서 보듯 코드·정치화도 심각하다. 주요 기업을 정권 통제에 놓겠다는 발상(發想) 아닌가. 여당에서 “삼성이 순이익 중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에게 1000만 원씩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재벌 해체와 대기업 공기업화를 주장하는 진보 인사도 많다. 그럴 의도가 아니라면 경영 개입 발상부터 접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