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기 전반을 돌아 후반(後半)에 들어서는 반환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와 만찬을 하고 오는 19일 국민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과연 획기적인 국정 쇄신을 모색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 등의 거리에서 경쟁적으로 맞불집회를 벌이는 국민 분열 사태에 직면해 국가가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사실, 조국 사태는 현 정권이 가지고 있는 정통성과 도덕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 장관직에 대한 인사 실패의 문제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을, 본인은 물론 청와대와 여권의 대응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어서 상당수 국민은 실망하다 못해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공정과 개혁을 기치로 출발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념 체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여권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인권 침해’와 ‘적폐 검찰’로 몰고, 검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표적 수사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 주장이 군중집회에 가면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람을 격려하고 심지어 ‘죄가 없다’는 강변으로 비화한다. 인권 보호를 핑계로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려는 ‘조국 수호대’의 활동은 상식 이하다. 이 모든 것이 진영논리에서 비롯됐고, 정치적 선동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모든 국민을 섬기고 인사에 있어서 탕평책을 쓰겠다고 장담했지만, 지금은 사퇴한 법무장관의 후임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진영싸움으로 진흙탕이 된 정국에서 아무도 그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는 건 당연하다. 박근혜 전 정부 시절에도 후임자의 충원을 제때에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청문회 탓만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사실, 검찰 개혁보다 훨씬 더 급한 것이 경제 문제다. 여권은 검찰 개혁 등으로 국민의 관심을 정치적 쟁점으로 돌리려 하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것은 경기침체와 민생이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불황이라고 할 정도이고 마땅한 성장동력도 찾지 못해 장기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국제 환경도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일자리가 늘었다고 하지만 건실한 일자리는 사상 초유로 줄고 부실한 일자리만 늘었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그 방향과 철학은 옳을 수도 있으나,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일괄 적용 문제점은 이미 입증됐다. 청년실업과 노인빈곤 문제를 현금으로 해결하려는 졸속 조치는 국민을 나태하게 만든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국민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 국가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

안보가 현 정부의 가장 큰 성과였으나 그마저도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다. 평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국 평화를 상대에게 떠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평화는 적극적으로 추구돼야 하며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즉, 당근과 채찍의 양면 정책을 구사해야만 상대를 대화와 협상의 자리로 이끌 수 있다. 진정한 태도 변화가 없으면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가 됐다. 평화를 수용할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한 선택의 차이가 현격할 것이란 경고를 주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임기 후반기를 시작한 문 대통령은 지난 국정 운영과 정책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오로지 과감한 인적 쇄신과 지혜로운 정책 전환만이 정부의 성공을 기약하고 정권 재창출로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