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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男주인공 계보

2000년대 들어 대중을 울고 웃게 한 남자 주인공들의 계보를 살펴봤다.

◇재벌男=내 주변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드라마 속에는 수시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 등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공식은 빤하다. 복잡한 가족사, 남다른 아픔을 가졌고 일밖에 모르는 재벌가 남성이 있다. 게다가, 빼어나게 잘생겼다. 그러다 우연히 가난하지만 당차고, 역시나 아주 매력적인 여주인공과 마주친다. 평생을 살아가며 동선 한번 겹치지 않았을 것 같은 두 사람은 처음에는 다투지만 이내 서로에게 빠져든다.

◇판타지男=잘생긴 재벌 남성은 식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재벌로도 모자란 것일까. 2010년 이후에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판타지 속 주인공들이 드라마 시장을 섭렵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은 외계인이었고, ‘도깨비’의 김신(공유)은 935세 도깨비였다. 그들의 사랑법은 남다르다. 인간과 타액이 섞이면 몸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함께 식사조차 하지 않는 도민준은 천송이(전지현)와 기꺼이 키스를 나눈 후 앓아 눕는다.

◇아저씨男=대한민국에서 ‘아저씨’라는 단어에는 적잖이 부정적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들이 괜찮은 ‘어른’의 모습을 갖춘다면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는 외모나 재력, 권력이 아니라 연륜에서 발산되는 매력이다. 진정한 의미의 ‘키다리 아저씨’라 할 수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과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초이(이병헌)가 여기 해당된다. 그들은 나이 차가 많은 여주인공에게 성(性)적으로 어필하지 않는다. 그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밀크男=최근에는 ‘백마 탄 왕자’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최택(박보검)이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서준희(정해인) 등 보다 현실적인 남성 주인공이 늘었다. 부드럽고 세심하며 배려심을 갖춘 남성은 항상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는 오랫동안 전형적인 ‘나쁜 남자’ 주인공 옆에서 여주인공을 지키는 ‘서브 남주’ 캐릭터에 머무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단독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인간적인 부족함과 빈틈을 보이는 이들은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애와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물론 박보검, 정해인 같은 외모를 가진 남성이 흔치 않다는 것이 맹점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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