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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부장

반환점을 눈앞에 둔 문재인 정부의 한국 경제가 위기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민간 경제연구소와 학계, 야당에서는 위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위기를 쉽게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펄쩍 뛴다.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가 위기라고 얘기하면, 위기가 아니어도 위기가 발생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외환위기 때부터 경제 관료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자주 쓰는 말인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국 경제의 근간(根幹)을 구성하는 지표가 일제히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경제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31일 내놓은 ‘산업활동동향’(2019년 9월)을 보면, 올해 3분기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능력은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1년 1분기 이후 48년여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제조업 생산능력이란 ‘사업체가 정상적인 조업 환경에서 생산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량(적정 생산능력)’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생산능력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8년 1분기부터이고, 2018년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7분기 연속 감소했다.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지 않는데 제조업 생산능력이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서 투자하는 돈(해외직접투자)은 사상 최대이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돈(외국인 직접투자)은 급감하고 있다. 설비투자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도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6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서비스업 발전도 느리면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 급락은 불가피하다. 한국은행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7.5%에서 2000년대 초·중반 4∼5%로 하락했고, 현재(2019∼2020년 연평균)는 2.5∼2.6%다. 이런 속도로 떨어지면 앞으로 10년 안에 1%대로 추락할 것이다.

재정 건전성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국내총생산(GDP)의 36.0%였던 국가채무 비율은 2023년에는 46.4%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정부의 전망이 그렇다는 얘기고,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국가채무 비율이 48.2%까지 치솟고, 2031년에는 60.4%로 사상 처음으로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제 관료들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강변하기에 바쁘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주가와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해야 경제 위기라고 인정할 태세다. 경제는 위기를 향해 치닫는데, 입맛에 맞는 지표만 보면서 자리보전에 여념이 없는 관료들이 득시글대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경제계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 관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1997∼1998년 외환위기 시절 경제 관료보다 더 나쁜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