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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꿈에 산신령이라도 나타난 건가. “북악산 자락으로 가라. 귀인이 주머니를 줄 것이니 일이 꼬이면 하나씩 꺼내보거라. 어서 가서 나라를 구하거라”, 이랬을까.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폭로랍시고 내놓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 전 내사’의 근거라는 것을 들으며 별의별 상상을 다 해 본다. 막상 폭로 내용이 어처구니없다. 윤 총장이 사석에서 사모펀드와 관련해 “조국은 나쁜 놈”이라 비난하고 “장관이 된다 해도 사법 처리감”이라 했다는 걸 근거라고 댔다. 평소 로직을 중시한 그의 작품치고는 빈약하다. “너무 나갔다”는 평가가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유 씨가 조 씨 부인 정경심 교수의 PC 하드 디스크 반출을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은 게 한 달 전쯤 일이다. 느닷없이 KBS 기자들과 검찰의 유착설을 제기했다가 일선 기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장으로 향하는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에게 노예상이 조언한다. “중요한 건 관중이야. 그들이 환호하게 해야 돼.” 유 씨의 ‘아무 말 대잔치’도 늘 검투장 내의 군중을 향한다. 그리고 이들의 흥분을 유발하는 데에는 효과를 봤다. 과연 그는 군중심리를 부추기는 ‘검투사 의식’에 충만한 걸까. 혹은 ‘내가 아니면 이 세상을 구할 자 누구냐’는 신념에 가득 찬 ‘구세주 콤플렉스’라도 앓는 건가.

유 씨는 친문(친문재인)의 순수혈통을 자랑하는 여권 핵심 실세다. 그는 조국의 몰락 이전부터 친문 일파가 점지해놓은 차기 대권 주자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가 일부 좌파 진영 내에서는 세상의 불의와 불공정을 통렬히 비판하는 ‘멸균 지식인’(강준만 교수)으로 추앙받았던 때가 있었다. 과거 ‘서울대 프락치사건’(실은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사건’)의 주모자로 재판받았을 때 썼던 ‘항소이유서’를 돌려 읽었던 청년들의 멘토 노릇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정치 게임과 권모술수에 능수능란한 마키아벨리안, 나 홀로 진리를 독점한다는 나르시시스트의 상징이 됐다. 진영 논리에 함몰돼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우적(友敵) 논리에 젖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쏟아붓는 지식인의 타락은 어쩌면 숙명일 것이다.

유 씨가 진보 장기집권 플랜을 짜겠다거나 차기 대권 도전 구도를 그리겠다면 그건 심각한 오판으로 보인다. 그가 쏟아낸 말이 이미 부메랑이 되어 수도권 민심과 중도층의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그의 행태가 정권 살리기에 복무하는지 그 반대인지는 분명하다. 지금 유 씨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대국민 사과다. 과장과 허튼소리로 군중을 선동하고, 민심을 교란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것을 참회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게 지식인의 정직성이다. 며칠 전 만난 유력 여권 인사는 유 씨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말을 꺼내지도 말라는 투였다. 집권 여당 내에서도 좀 작작하라는 소리가 나온다. 소통과 교류를 끊는 걸 ‘ex-communication’, 즉 파문(破門)이라 한다. 유 씨가 세 치 혀로 가벼운 입놀림을 계속한다면 상식을 구하는 국민으로부터는 물론 자기네 진영에서도 파문당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