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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베이징특파원

지난 9월 초 홍콩섬에 있는 홍콩대학에서 만난 학생회 간부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는 폭력 사태로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면서 8월 중순 대규모 평화 집회로 안정을 찾았던 홍콩이 시위대의 요구 사항에 대한 홍콩 정부의 묵묵부답으로 다시 밤이면 경찰과 시위대 간 공방이 거세지던 때였다. 이 간부가 시위대의 폭력을 옹호하는 논리는 이랬다. “우리는 ‘폭력’이 아니라 ‘무력’을 행사한다. 폭력은 불합리하고 과도한 것이지만 무력은 합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 무력으로 홍콩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대항하고 있다. 무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이른바 ‘이우즈바오(以武制暴)’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에 대항한 우리나라 ‘386’ 운동권들이 국가 기구와 제도의 폭력성에 맞서려면 시위현장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옹호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력이든 폭력이든 물리적 힘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본질상 차이는 없다. 그 이후 홍콩 사태의 전개 과정은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낳는 ‘폭력의 악순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위대의 경찰 위협에 대해 경찰이 경고 사격을 넘어 직접 사격을 한 사건이 발생했고, 반중(反中)·친중(親中) 시위대 간 폭력 사태와 시위 지도부 등을 향한 ‘백색 테러’ 등이 이어졌다. 이처럼 폭력이 일상화하면서 시위대도 중국 중앙 및 홍콩 정부, 홍콩 경찰도 이분법적 논리만 횡행했다.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반대를 내걸고 홍콩 자치와 민주 회복을 주장하던 시위대는 지하철역과 중국 상점 방화와 기물 파괴 등 자신들의 폭력 사용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홍콩의 침묵하는 다수는 극렬 시위에 반감을 갖고 있지만, 시위대의 폭력이 두려워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중앙정부와 관영 매체, 홍콩 정부도 이런 이분법적, 극단적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은 시위 초기부터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홍콩 시위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해법 제시는 전혀 없이 ‘한 줌’ 폭도들을 제거하면 사태가 해결될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의 폭력도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폭력만 사라지면 홍콩이 안정될 거라는 중국 정부나 관영 매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는 양측 모두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냉정해져야 할 때다. 홍콩 시위대는 평화시위로 목소리를 내고, 중국 및 홍콩 정부는 시위대의 주장을 수용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중국의 한 지식인은 기자에게 “현재의 홍콩 사태는 중국이 자초했다. 중국이 홍콩에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훼손하면서 그 보복을 지금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28일 중국 공산당의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할 19차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의 특성상 홍콩 사태에 대한 토론 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지만 외면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