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헌고 사태 전문가 제언

“민주주의 장 이어야 할 학교
여의도 축소판 돼가고 있어
교사의 정치적 중립 준수는
헌법에도 다 적시된 내용”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에서 일부 학생들이 ‘정치 편향 교육’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또 다른 단체를 결성하고 반박에 나서, 이번 논란으로 학생들이 양분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등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하며, 학교 측이 정치·정파적 논란에서 중립을 지키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25일 인헌고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학교 2·3학년 학생 35명은 지난 24일 인헌고 ‘학생가온연합’(학가온)을 결성했다. 학가온 측은 “(정치 편향 교육 논란을 제기한)‘학생수호연합’(학수연)이 학생들 의견을 지우고 언론에 거짓을 과장해서 보도하도록 한 점, 사실과 다른 왜곡된 부분들을 정정해 바로잡고자 한다”며 “재학생들이 받은 비난, 욕설, 초상권 침해 등으로 받은 피해들을 정리해 보상받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헌고 한 관계자는 “학생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싸움까지 생길 뻔했다”며 “다음 주 학수연과 학가온 간 공개 토론이 진행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히 학교 교문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며 동영상을 찍는 시민단체 탓에 불편을 겪는 학생이 많다”며 “성명서를 작성하고 학생들 서명을 받는 활동도 학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확산하자 교육 당국도 대책 마련에 서두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3일 실시한 인헌고 특별장학에 대해 이르면 다음 주 초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의 정치 편향 발언을 각 반에서 실제로 몇 명이나 들었는지 등 설문조사 내용을 취합하고 있다”며 “이르면 다음 주 초쯤 이번 특별장학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인헌고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 문제가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가 ‘학교는 민주주의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학교가 ‘여의도의 축소판’이 된 것 같다”며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데, 갈등을 그대로 표출하며 조정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도 “교육청에서 쟁점 토론 수업 모형을 보급해줄 필요가 있다”며 독일의 ‘보이텔스 바흐 합의’를 소개했다. 보이텔스 바흐 합의는 사회 쟁점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는 독일의 교육 모델이다. 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 이야기만 하지 않는 것”이라며 “다른 쪽 이야기를 해 주고, 서로가 가진 논리성과 비논리성을 알려주고 학생이 결론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건 헌법, 국가공무원법 등에 다 적시돼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다만 “그러나 인헌고 사태는 형사범죄와 달리 판단의 영역이 들어가는 문제이다 보니, 교육감·교육청 등이 모두 진보 일색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이 나올지 모르겠다”며 “교사든 교육감이든 대통령이든, 교육을 정치적·정쟁적인 주제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종민·송유근·조재연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