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조금 덜 만나고/ 조금 덜 기대하며/ 많은 약속 않기로 해요’(도원경 ‘다시 사랑한다면’ 중). 비장한 느낌의 노래지만 나는 이따금 웃으며 흥얼거린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연출한다면’. 아마 조금 더 만나고 조금 더 신중하며 함부로 약속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살다 보면 ‘너 땜에 잠도 못 자고/ 너 땜에 밤새 설레는’(데이브레이크 ‘꽃길만 걷게 해줄게’ 중) 시절이 온다. 때마침 손흥민 선수가 유럽 무대 통산 121골로 차범근 전 감독이 갖고 있던 최다 골 타이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웠으니 깼다는 소식도 조만간 들릴 것이다. 이럴 땐 차 전 감독을 인터뷰하고 싶다. “다시 뛰고 싶지 않으세요?” 난감한 이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은퇴 후 그가 걸은 길에 이미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축구교실, 축구감독, 축구해설위원. 은퇴한 전문가에겐 공부하고 지도하고 설명하는 그 길이 꽃길이다.
나도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다시 연출하고 싶지 않으세요?” 사실은 수시로 기획한다. 눈으로 촬영하고 맘대로 편집한다. 다만 발표하지 않을 뿐이다. 오늘의 캐스팅 후보는 두 명의 축구 전설이다. 차범근이 현역일 때 허정무 역시 날리는 선수였다. 여러 면에서 경력이 일치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본 기억이 흐릿하다. 나는 이 두 사람을 무대에 불러 함께 노래하게 만들고 싶다. 이를테면 ‘기적의 이중창’이다. 제목이야 ‘기적의 듀엣’도 좋고 ‘기적의 듀오’라고 해도 좋다. 단, 부제가 있다. ‘노래는 우리를 만나게 한다’ 혹은 ‘희망을 노래합시다’. 사실 예전에도 ‘듀엣가요제’(MBC), ‘판타스틱듀오’(SBS)가 있었다. 공통점은 좋아하는 사람끼리, 혹은 통하는 사람끼리 노래 부르는 거였다. 만약에 한때의 라이벌, 아니 원수가 된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노래를 부른다면 어떨까. 물론 섭외가 난망일 것이다. 그러나 섭외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고양이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훈련된 쥐들이 일거에 달려들면 목에 방울도 달 수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요즘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KBS 2TV)이다. 말미에 나오는 OST가 마음을 끈다. 누가 부르나 했더니 슈스케 출신 존박(사진)이다. 다시 그 장면이 떠오른다. 2010년 ‘슈퍼스타K2’(Mnet)의 캐치프레이즈는 ‘기적을 노래하라’였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빅2의 자리에는 전셋집에 가족 셋이 모여 사는 게 꿈이라는 환풍기 수리공 허각과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9’에서 Top 20 안에 든 미국대학 출신의 존박이 호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의 키 차이는 무려(?) 17㎝.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존박이 허각에게 보여준 진심의 표정이다. 우승은 놓쳤지만 그는 더 큰 것을 얻었다. 착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세상은 건강하지 않다. ‘우리 둘은/ 얼마나 오래/ 같이 걷게 될까’(존박 ‘이상한 사람’ 중). 선망은 희망을 이길 수 없고 미움은 사랑을 누를 수 없다.
방송은 안 돼도 여러 곳에서 ‘기적의 이중창’이 울려 퍼지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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