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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만든 세계 / 빈스 베이저 지음, 배상규 옮김 / 까치

사상누각(沙上樓閣)은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모래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모래알 같은’이라는 표현은 모래는 흔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선입견이 싹 달아난다. 모래는 쓸모없고 흔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세운 핵심적인 물질이고, 지금처럼 마구 써대다가는 고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지질학의 어든 웬트워스 구분 척도는 모래를 지름이 0.0625㎜에서 2㎜ 사이인 단단한 알갱이로 정의한다. 인간의 머리카락보다 조금 큰 이 알갱이는 현대 건축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와 유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바닥,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에 모래가 들어가 있다. 출퇴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스팔트 도로, 매일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제작에도 모래가 쓰인다.

기실 모래가 이렇게 귀한 것임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품질 좋은 모래를 채취하는 사업에 뛰어들었고, 불법 암시장이 세계 곳곳에 형성됐다. 미국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각국 현장을 취재하며 모래 때문에 칼부림이 일어나는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그가 처음 모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팔레람 차우한이라는 인도인이 살해당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뉴델리 남동부 농촌 마을에서 농민 차우한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취재하며, 그 발단이 모래 이권 다툼임을 알게 된다. 그 배후에는 전 세계에 불어닥친 모래 고갈 위기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 위기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 과거보다 모래를 더 필요로 하는 탓이다. 서구권 국가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도시 기반 시설과 주택을 짓는 데 모래 수요가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영국은 내륙에서 모래를 구하기가 어렵자 바다 밑에서 퍼 올리고 있으나, 50년 후면 바닥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도 50년 내에 자국에서 모래가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저자는 모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고갈 상태로 가는 다른 자원들과 마찬가지로 소비를 줄이려는 태도를 지니는 게 좋겠다고 권한다. 그러나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으로 소비 자체를 줄이기 힘들다면, 공유 경제 실천으로 소비량을 줄여보자고 제안한다. 362쪽, 1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