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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버티고’ 주연 천우희

계약직 고된 삶 묵직히 풀어내
이젠 어떤 역할도 편하게 연기

“버티려고 버틴 건지, 상황에 놓이니까 버텨지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버티고’의 한 장면

배우 천우희(사진)는 단역으로 시작해 15년 동안 연기를 해오며 의욕을 잃고 더 할 여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 엄청 강하고 단단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지칠 때도 있다”며 “그런 순간이 오면 억지로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힘들면 투정도 하고, 엄살도 부리고, 무너지면 주저앉아 있다가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생각이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를 선택한 배경이다. 16일 개봉한 이 영화는 고층 건물에 입주한 정보기술(IT) 기업의 계약직 디자이너인 서영(천우희)이 발붙일 곳 없이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냈다. 천우희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공감이라는 감정이 재밌어요. 어떤 공감은 너무 공감해서 불쾌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공감에는 위안이 된다”며 “연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시나리오를 받았다. ‘당신 떨어지지 않아요. 괜찮아요’라는 대사를 읽으며 촬영현장에서 가장 행복하고, 연기를 하며 존재하는 느낌을 받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한공주’로 신인상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린 천우희는 ‘곡성’(2016), ‘우상’(2018) 등 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해왔다. 이에 대해 그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에 끌린다”며 “시나리오 전체 틀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에도 돋보이거나 강렬한 캐릭터를 만나왔다. 돌이켜보면 내 안에서 그런 캐릭터를 원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최근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밝은 모습을 보여준 그는 “애드리브를 구사하며 망가지는 연기를 해보니 나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낸 느낌이 든다”며 “어떤 역할이든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에게 “배우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자 “내 또래 배우들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좋은 결과를 내 주목받지만 나는 상을 일찍 받은 후 부족함이 드러났다”며 “예전에는 내 연기에 흠이 없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조금 깨지고, 스스로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내 인생이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진다는 생각으로 지치지 않고 달려가게 된다”고 답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사진=나무엑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