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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文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
아베 야스쿠니 참배 같은 충격
美, 한·일 관계 복원 관여 개시

미·일 회담서 3국 공조 제기
1965 협정 준수 의지천명으로
한·일 대치, 동맹위기 해소해야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한·미 관계는 험악한 상태다. 반미 시위가 아니라 집권세력의 정책 탓이라는 점에서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추진 이래 최대 위기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카터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한미군 철수는 의회와 국무부·국방부의 반대로 백지화됐지만, 문 정부는 지소미아가 한·미 동맹 이슈가 아니라 한·일 간 문제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 때 워싱턴의 한국통 인사들은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헌신이 어느 수준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 결정” “2013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만큼 미국을 당황케 한 사건”이라고 했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한·미 동맹의 위기로 비화할 것인 만큼 하루빨리 재고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더 이상한 일은 지난 9월 23일 한·미 정상회담 때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브리핑 때 “지소미아나 한·미·일 안보 협력 필요성에 대해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지난 8월 22일 지소미아 파기 결정 때 미국 측은 “문 정부가 동북아의 중대한 안보 도전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망스럽다”고까지 하면서 비판했는데, 한 달 후 정상회담 때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미국은 핵심 안보 사항이라고 여기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관철하는 나라다. 만약 미국이 동맹 현안이라고 주장해온 지소미아를 정상회담 의제에서 자발적으로 제외했다면, 한·미 관계가 회복불능 상태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파국을 피하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체면치레용 회담이나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 이틀 후 열린 미·일 정상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일 안보 공조 필요성을 얘기했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를 아베 총리와 먼저 논의한 것은 일단 일본을 움직인 뒤 한국과는 실무선에서 논의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복잡한 지소미아 문제를 아베 총리와 협의한 데 이어 백악관이 이런 사실을 웹사이트에 올려 전 세계에 공지한 것을 보면 미국의 의지가 어느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일 정상이 한·미·일 공조를 얘기한 것은 지소미아 복원을 위한 미국의 관여 본격화 신호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전·현직 미 당국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징용 갈등에서 지소미아 파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일본 측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7년 집권한 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할 때, 일본은 미국 측에 이를 저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문 정부는 미국 관여를 일축한 뒤 합의를 파기했다. 그러자 이번엔 아베 정부가 징용 판결 이후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에 관여하지 말 것을 주문해 지소미아 파기 국면까지 치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미국 국익에 배치된다는 판단이 전면화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미국 측 인사들의 전언이다.

미·일 정상회담 후 일본의 변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22일 일본 신임 국왕 나루히토(德仁) 즉위식을 앞두고 일본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일본이 한국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자”는 유화론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2조 원대 5G 이동통신 장비 공급권을 따냈다.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을 중심으로 대법원 판결로 인한 한·일 갈등을 해소할 강제징용자기금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문 대통령이 움직일 차례다. “동맹보다 국익”이라는 선동적 구호 대신 전략적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한다. 조국 정국에 더해 한·일 갈등 장기화로 한·미 동맹까지 흔들리면 레임덕도 앞당겨진다. 반일이 국내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통설도 있지만, 국민의 반응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총선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접고, 반일에 집착하는 외교·안보 라인을 시급히 교체해야 한다. 또 1965년 한·일 협정 준수 의지 표명을 통해 대일 관계 정상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지지율 30%대가 되면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는데 이미 진입했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동맹 균열이 표면화하면 북핵 폐기와 남북 관계 개선도 물거품이 된다. 전면적 안보 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지소미아를 되돌리는 일이 정권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