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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전임기자

가을 여행주간이 오는 29일로 끝난다. 국내 관광 수요를 창출하고 가족여행 확대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내수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여행주간이, 이번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사태(事態)’로까지 표현되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극심한 정치적 갈등이 40일 넘게 이어지면서, 여행을 다녀올 만한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게 원인이었으리라. 여기다 막판에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겠다. 국민의 여행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극심한 경기 부진이다. 지난달 가계의 ‘여행비 지출’ 전망 수준은 5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경기불황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기호성 소비인 여행비부터 줄이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아이돌 걸그룹 출신 연예인이 캠핑 여행을 하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가을 여행주간 TV 광고로 만들어 돌려댄다 해도 한계가 있다. 가계가 여행비를 줄이고, 개인의 여행 경험이 적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소비가 줄어드는 것 이상이다. 지역 경기 활성화나 소비 확대 등 경제적 문제를 빼놓고도 그렇다. 다른 소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행을 줄이면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과 행복감은 낮아진다.

국내 관광수요를 좌우하는 건 전적으로 ‘경제적 여건’이지만, 정책의 목표가 ‘국민 행복’이라면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천수답 농사처럼,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6년째 진행해오고 있는 여행주간이 감성적 광고캠페인만 앞세운 채 별다른 진화(進化) 없이 해마다 비슷비슷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여행 수요 확장의 가능성이 가장 큰 세대는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5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이들의 퇴직 후 희망활동 1순위는 늘 ‘여행’이다. 은퇴자의 경제적 여력이 문제라지만, 정책 목표의 방점이 ‘국민 행복’에 찍혀 있다면 저비용으로도 여행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국민 행복을 관리하는 선진국의 정책을 보면 부러운 게 하나둘이 아니다. 프랑스는 국립고령보험금고와 국립바캉스수표사무소가 협력해서 고령자들의 여행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해주는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시니어층의 여행 친구를 콘셉트로 진행하는 테마별 여행프로그램인 이른바 ‘클럽 투어리즘’이 크게 발달했다. 국토교통성이 시니어 여행을 지원하고, 대학은 시니어 대상의 트래블스터디 프로그램 강좌를 연다. 미국에서도 최대 민간 여행교육 단체인 ‘로드 스칼라’가 연간 10만 명이 넘는 시니어층을 대상으로 탐험, 취미, 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여행과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고령층 관광지원은 사회 취약계층 고령자를 중심에 놓고 복지적 시각에서만 접근해왔다. 건강하고 소득 높은 은퇴자를 위한 변변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여행상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정책에 전략이 없는 탓이다. 그때그때 TV 예능프로그램의 동화 같은 캠핑장면으로 충동질한 여행으로 소비는 끌어낼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행복’을 채워주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