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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정치부 차장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빗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막장 국회’라고 비판받아 온 20대 국회가 최근 막장 리스트를 추가하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 전면 확대 법안(초중등교육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교육위 안건조정위원회가 심의 기간에 법안을 처리하지 않자 더불어민주당 등이 전체회의 의결을 강행한 것이다. 유치원 비리를 막기 위한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같은 날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지난해 12월 27일 교육위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진 뒤 자동 부의를 위한 날짜만 채웠다. 여야 협상은 전무했다. 23일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과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운영법 개정안이 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채로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를 통과했다.

이들 사례는 의견이 맞설 경우 협상을 통해 타협안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패스트트랙 지정 또는 안건조정위 회부 → 아무런 협상 없이 경과 기간만 소요 → 경과 기간 종료 후 자동 부의 → 일방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 또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파국의 경로’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숙의 기간을 갖자는 ‘패스트트랙’이 그 취지와는 정반대로 협의를 건너뛰는 ‘패싱 트랙’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이는 20대 국회의 나쁜 발명품이다. 지난 2016년 12월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특별법안’이 패스트트랙 1호로 지정돼 이듬해 본회의에서 처리된 뒤 유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 소수당의 육탄 저지로 상징되는 ‘동물 국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무적인 협상 기간을 설정한 국회선진화법(2012년 5월 개정된 국회법)이 능욕당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 정당에 안건조정위 심의 기간(최장 90일)과 패스트트랙 심의 기간(상임위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60일 등 최장 330일)은 협상을 위한 시간이 아닌 그저 때우기만 하거나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기간으로 전락했다.

20대 국회의 이 같은 파국의 경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문재인 정부의 주력 법안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모두 지난 4월 30일 여야의 육탄전 속에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오는 10월 27일이면 상임위 심의 기간이 끝나는 이들 법안은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 크다. 합의 없이 표결이 이뤄질 경우 4월 30일의 난장판 국회가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거제도와 형사·사법체계, 보육·교육 등 국가 운영과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의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방을 패싱한 채 처리된 법은 정권의 주인이나 국회 다수당이 바뀔 경우 ‘정책 뒤집기’ 0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임기 8개월을 남겨 둔 20대 국회가 이제라도 파국이 아닌 타협의 경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