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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전면금지한다는 ‘9·19 남북 군사 분야 합의’에 서명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장밋빛 청사진으로 한민족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싱크탱크들은 지난 1년간 북한 핵탄두는 10기 이상 늘었다는 보고서를 쏟아냈고, 안보의 버팀목이던 한·미 연합군 체제는 사실상 와해됐다. ‘북한의 사기극’에 놀아났다는 의구심이 증폭되자 칠순, 팔순의 예비역 장성들이 나서 “핵을 보유한 북한에 의해 망국의 굿판이 벌어질 경우 국민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는 ‘킬링필드’가 이 땅에 펼쳐질 것이 두려울 따름”이라는 성명서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 군사합의 1년 만에 대한민국군은 완벽히 두 조각이 났다. 예비역 장성들의 절대다수가 9·19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 정부의 군 수뇌부에 쿠데타 모의 혐의를 뒤집어씌우려다 불발에 그쳤고, 예비역 장성들을 적폐세력 취급하고 있다. 육·해·공군 및 해병대 회원 2250명의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는 지난 17일 ‘대한민국 성우회원 일동’ 명의로 ‘남북 군사합의 1년, 안보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군사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성명을 냈다. 성우회는 “남북 군사합의 시행 후 북한은 우리 F-35 전투기 도입, 한미연합훈련 등 국가 주권 행사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국가원수까지 조롱·모욕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국가 자존심을 짓밟는 북한의 부당한 행위에 한마디도 못하고 국민을 희망 고문하는 ‘물렁한’ 정부를 지켜보는 국민의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년 전 성우회가 침묵하자 남북 군사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비상결사체로 출범했던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회원 약 810명)은 18일 성명서에서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방력은 해체 중인 데 반해, 북한은 신형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 4종을 연속 발사하면서 일개 국장급 관리가 대통령을 조롱하듯 비웃고 있다”고 개탄하고, “남북군사합의서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이행 문서이고 문 정권은 이적성 문서에 합의하고 이를 비준했다”고 주장했다. 대수장은 “악(惡)으로 똘똘 뭉친 독재자의 말을 믿는 것은 파멸을 부르는 가짜 평화요, 집단최면일 뿐”이라며 “남북 군사합의서가 방어 준비 태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정부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며 불편한 진실과 맞설 것을 호소했다.

남북 군사합의 1년 만에, 한반도 안보 상황은 북한이 원하던 바대로 진행되는 분위기다. 북한이 치밀히 준비해온 ‘핵보유국에 적응하도록 남한에 면역 주사를 놓을 것’이라던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의 예상대로다. 북한이 건 마법에 걸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의 추락’보다 더 중요한,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의 추락’은 한순간에 우리 경제를 몰락시키고 국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다. 국민이 정신 못 차리고 끌려가다 보면 핵 없는 세상 대신 ‘킬링필드’ 생지옥이 찾아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