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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근래 ‘혐오 표현’에 대해 ‘규제냐, 표현의 자유냐’를 놓고 논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수자에 대해 언어로 하는 구타이자 낙인이며 때로는 재갈을 물리는 행위인 혐오 표현에 대해 법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는 적게나마 있었습니다. 이번 주 출간된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서해문집, 208쪽, 1만4000원)은 ‘혐오표현’에 관해 연구해온 젊은 철학자 유민석 씨의 책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철학적 관점에서 혐오 표현과 거기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혐오 표현’과 ‘표현의 자유’ 간 대립을 언어철학과 정치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정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혐오표현을 상쇄할 수 있는’ 무기로 ‘대항표현’(Counter Speech)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연구에 따르면, 혐오 표현의 기능 중에는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실 소수자인 혐오 표현 피해자들에게 ‘맞대응하라’고 하는 건 새로운 부담을 지울뿐더러 더 큰 폭력을 감수하게 할 수 있습니다. 혐오 표현에 대해 다른 표현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논리들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책은 대항표현의 가능성과 당위를 철학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실의 사례를 통해 살펴봅니다. 이번 주 북리뷰에서 ‘혐오의 시대…’의 소개를 비중 있게 준비했으나 아무래도 철학적 전문성이랄지, ‘활동가용’의 성격이 강해서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습니다.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주 나온 프랑스 여성작가의 ‘성폭력 문화에 깃든 감정 노동과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제들’(우리나비, 120쪽, 1만7000원)은 간단한 그림을 위주로 해서 수월하게 다가오지만 강력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입니다. 저자 엠마는 페미니스트이자 컴퓨터 엔지니어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주변, 시사 문제까지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는 그림을 그려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어린이 그림책 판형으로 만들어진 책은 어린 시절 귀엽다는 핑계로 자신에게 추근댔던 남자 어른의 기억부터 학창시절, 성인이 돼서까지 여전히 은연중에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성폭력 문화를 다룹니다. 엠마는 이런 성폭력 문화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그저 치한을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미 우리 삶 안에 들어와 있는 남자들, 즉 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 남친 등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책을 보면, 큰 틀에서 선진국이다 싶은 프랑스도 뿌리 깊은 남성 지배적 젠더 문화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엠마는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일로만 생각하도록 여자의 역할을 세뇌받아 온 인류의 오랜 편견 속에서 ‘성폭력 문화’가 만연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성폭력 문제의 본질은 남녀 간의 ‘동의 여부’에 달렸으며, 여전히 남녀는 ‘서로 만들어 가는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때로 철학적 문제를 다루지만, 만화적으로 풀어내서인지 쉽게 다가오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페미니즘 문제뿐 아니라 공권력의 남용문제, ‘생식 및 번식 노동자’로 차별되는 여성 노동문제, 남자의 오르가슴과 욕정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성생활의 문제 등 엠마의 관심사는 다양합니다. 한번 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보게 되고 마는 책입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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