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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탈원전으로 국내에서는 꺼져 가는 140만㎾짜리 신형경수로. 100만 명이 쓸 수 있는 3세대 원자로 APR1400이 지난 27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최종설계인증을 취득했다. 지난해 9월 표준설계승인 취득 후 법제화를 거쳐 연방 규정 부록에 등재된 것이다. 이는 100% 국내 기술로 개발한 APR1400을 미국 내에 건설할 수 있다는 것으로, 15년 동안 유효하고 1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오는 2050년까지 건설한다면 설계수명이 60년이니 20년을 연장할 경우 미국에서 마지막 APR1400이 퇴역하는 시점은 2130년이 된다. 그때까진 바닷물로 ‘무한 보충’할 수 있는 핵융합이 상업화되고도 남을 시점이다. 이번 설계인증은 미국에서 외국 원자로 최초로, 역대 최단기간에 취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2017년 10월 유럽에서도 인증받았으니 태평양과 대서양에 쌍무지개가 뜬 셈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도중하차, 중국과 러시아는 언감생심이다.

신고리 3·4·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는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APR1400 4기와 같은 모형이다. 후쿠시마 사고처럼 외부 전원을 상실했을 때도 격납 건물 내 온도와 압력이 내려가도록 설계해 안전성을 한층 강화했다.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와 후쿠시마 교훈을 반영해 기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하는 방재법을 개정했고, 침수 대비 방수문, 이동형 발전차량 확보 등에 투자 후속 대책을 이행했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해산(解産)하고 미국이 공인(公認)한 우리 원전 기술을 더는 사장(死藏)시키지 말아야 한다.

석탄과 가스의 비어 가는 자리는 원전과 풍력과 태양으로 메우되 우리에게 맞는 황금률을 찾아내는 게 요체다. 세상에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가 따로 있단 말인가. 원전을 적폐로 몰아가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모두 값진 에너지로 만들어 쓰면 된다. 국민 정서와 과학기술로 맹아(萌芽)된 신토불이 원자력에 불을 다시 한 번 지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석탄 소비는 늘어난 반면 원자력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줄었다. 국내 원자력 소비량은 3020만TOE(석유환산톤·1TOE는 1000만㎉)로 전년 대비 340만TOE나 떨어졌다. 2016년과 비교해 보면 650만TOE나 줄었다는 것. 탈원전을 선도하는 독일의 지난해 원자력 소비량은 전년 대비 10만TOE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지난해 지구촌 원전은 2.4% 증가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중국의 원자력 소비량은 18.6%, 일본은 68.9% 증가했다. 2016년과 비교하면 중국은 37.9%, 일본은 177.5% 올랐다. 프랑스는 3.7%, 미국은 0.3% 늘었다.

이쯤 되면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에너지 정책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출력 증강과 수명 연장으로 연명하던 종주국 미국이 신형 핵연료와 소형 원자로를 시작으로 중국과 함께 원자력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양국 모두 신재생에너지에 천문학적 투자를 했다. 신재생과 원자력이 상호 배타적이 아니란 방증이다.

물론 40년의 건설 공백은 원전 원조 미국도 버거워할 만큼 산업 기반과 인적자원에 공백을 남겼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지원 아래 대학가엔 순풍이, 산업계엔 훈풍이 불고 있다. 환경 단체의 근거 없는 주장대로 ‘지난날의 낡은’ 기술이라면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 왜 신재생과 함께 원자력에 주목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