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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는 골퍼 경기 모습 담은
은제 버클 장식 붉은 가죽벨트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서 남서쪽으로 15마일 떨어진 프레스트윅 골프장. 지금으로부터 159년 전인 1860년 10월 17일. 1만여 명의 갤러리가 새벽부터 골프장으로 모여들었다. 영국 전역의 골퍼들을 대상으로 한 제1회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이 열리는 날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디 오픈이라고 명하지 않고 그저 ‘오픈’이라고 했다. 8명이 출전했지만, 명실공히 영국 골프의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였다. 수십 년 동안 영국 골프계의 신으로 불리던 앨런 로버트슨이 지난해에 사망한 것을 기리는 명분과 함께 공석이 된 영국 골퍼의 1인자를 뽑는 이벤트였다.

우승 후보는 올드 톰 모리스와 윌리 파크 시니어. 27세의 파크는 머슬버러에 기반을 둔 뜨는 별이었고, 39세인 모리스는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타계한 스승 로버트슨에 버금가는 당대 스코틀랜드 최강이었다. 파크는 사실 이번 대회가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았다. 자신이 이기고 싶었던 로버트슨이 사망하는 바람에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파크는 20세이던 7년 전, 그러니까 1853년에 신문 지상을 통해 로버트슨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로버트슨이 응하지 않아 맞대결은 무산됐다. 파크는 최고의 골퍼로 인정했던 로버트슨을 추모하는 의미로 오픈에 참가했다.

프레스트윅에 모인 참가 선수들은 단 하루, 단판으로 승부를 가렸다. 12개 홀의 3800야드를 세 차례 도는 다소 힘에 부치는 총 36홀의 스트로크 방식이었다. 첫 대회인 데다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까지 참가한 탓에 상금은 없었다. 하지만 공식 오픈이었던 만큼 챔피언벨트는 준비됐다. 벨트 4곳에 골퍼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새겨넣은 은제 버클 장식의 모로코산 붉은색 가죽 벨트였다.

경기는 정오에 열렸다. 앞 조에 속했던 파크가 먼저 출발했다. 승산은 뒤에서 쫓던 모리스에게 있었다. 10년간 자신이 헤드 프로로 속해 있던 홈그라운드 골프장이었기 때문. 그는 자신이 갈고 다듬었던 벙커의 상태와 잔디의 결은 물론 페어웨이와 러프의 특성까지 꿰뚫고 있어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1라운드는 젊은 패기의 파크 쪽으로 기울었다. 1라운드 결과 파크는 55타, 모리스는 58타. 쉬는 시간 없이 2라운드가 재개됐지만 둘 다 59타를 쳐 파크가 여전히 3타 앞섰다. 팽팽한 접전 끝에 3차전에서 모리스가 59타로 파크에게 1타 앞섰지만, 합계 스코어는 파크(55-59-60)가 174타로 모리스(58-59-59)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초대 챔피언 파크는 영국 최강자가 됐다. 오늘날의 디 오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8명이 출전했던 조촐한 이 대회가 159년이 흐른 뒤인 2019년에도 어김없이 치러졌다. 제148회 디 오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메이저대회가 됐다는 걸 당시 출전했던 골퍼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이미지 크게보기 제1회 디 오픈 우승자에게 주어진 챔피언 벨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 영국골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