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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장

지난 11일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이 20일로 끝났다. 한·미 동맹의 연합훈련이지만 ‘동맹’이라는 이름도 쓰지 못하고 목적과 지향점도 애매한 사실상 ‘홍길동군(軍)’의 훈련으로 종료된 것이다. 이번 훈련은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 병력이 동원되지 않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형태의 ‘워게임’으로 진행됐다. 이 모두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남측과는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조평통을 비롯한 북한 매체의 막말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갈수록 저열하고 거칠어지는 표현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그런 북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역지사지해 가면서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다루듯이 천금 같은 대화 기회를 살려 가자”고 했다. 이 때문에 비핵화 협상 진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결말을 보겠다는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 탓에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도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우리 안보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동맹(同盟)인 미국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되는 북한의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을 직접 위협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위험성을 폄훼했다. 한국으로 날아올지도 모를 미사일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북한에 매우 위험스러운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고… 터무니없고 비싸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조롱했다’고 평가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막말에 더해 혈맹 미국의 홀대까지 겹쳐 대한민국의 국가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주변의 격랑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핵심은 미국발 안보 불확실성에 대책을 세워 흔들리는 한·미 동맹부터 바로세우는 것이다. 미국은 곧 시작될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서 한국 측에 50억 달러(약 6조550억 원)를 요구할 것이란 얘기가 계속 나온다. 여기에는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평가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을, 후속 일본·유럽연합(EU)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에 시범 케이스로 활용할 전망이다. 일본 역시 2021년으로 예정된 재협상에서 현재 방위비 분담금의 5배 인상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요구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인지 확실치 않지만 우리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대비책이 있는가?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만 계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의 참된 가치를 이해시키려면 우리가 먼저 동맹을 중시한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 첫걸음은 비핵화 이견 등 그동안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반복된 동맹의 엇박자를 바로잡는 것이다. 방위비를 적정 수준으로 올려주더라도 동맹을 우리의 국익에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할 말을 하는 한편, ‘핵을 가진 경제대국’이라는 목표는 결코 이루지 못할 헛된 꿈임을 정확히 말해줘야 한다. 우리 안보의 기본 틀이 한·미 동맹임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