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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개방 땐 번영, 쇄국 땐 수탈 哀史
DJ, 반대 딛고 일본과 새 관계
盧도‘1965 체제’불가피성 인정

文대통령, 反日 의식 섬뜩
북한과 협력해 克日 황당 해법
미증유 외교 國難 빠져들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는 국제정치라는 말이 있다.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충돌 지점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숙명이다. 4강의 틈바구니에서 적극적인 개방의 길로 나아갔을 땐 번영과 성장이, 쇄국의 길에서는 참담한 국권 수탈의 애사(哀史)가 있었다.

10년 전 2009년 8월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대(對)일본 정책에는 혜안이 있었다. 1973년 8월 8일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일본 도쿄(東京)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은 국내는 물론 한·일 간 큰 외교 갈등의 소재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일본 내에서는 피해자인 DJ가 일본 정부의 방관 책임을 제기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특히, 전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한 발언 이후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DJ는 참모와 여당 내의 강한 반대에도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 한·일 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당시 DJ는 오부치 총리에게 “25년 전 납치사건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나의 불행했던 과거는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모두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일본 문화 개방과 천황 호칭 사용 등에 대한 내부 반발에 대해선 “외교란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지금 일본 내 한류 붐은 DJ의 이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야당 총재일 때와 대통령일 때 생각의 폭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두 나라는 동북아시아 시대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운명체”라며 1965년 기본조약 체결과 관련, “언제까지 국교를 단절하고 지낼 수도 없고, 우리의 요구를 모두 관철시킬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피해자들로서는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처분한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관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 나섰다. 국제 관계와 국내 문제를 분리해 처리한 타협책이었다.

변호사 시절 부산에서 강제징용사건 변호를 맡기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보는 일본은 전임 두 대통령과 달랐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도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친일에 대한 반감은 섬뜩할 정도다. 나아가 지난 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선 “남북 간 경제 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라며 ‘연북극일(連北克日)’ 인식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전 정부에서 어렵게 일본과 타협한 위안부 합의를 ‘적폐’라며 파기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등 일본 전문가 20여 명의 의견을 모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한 국내 기업과 일본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보상하는 ‘1 + 1’ 아이디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1965년 기본조약이 제2 한·일합병조약이라는 식의 인식이 비친다. 외교학의 고전인 ‘외교론’의 저자 해럴드 니컬슨은 ‘법률가는 외교관으로서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형식 논리에 매몰되기 쉬운 기질이 타협을 우선시하는 외교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외교는 협상을 통해 국제 관계를 관리·해결해 나가는 것”이라며 외교는 ‘예술’이라고도 했다.

‘애국이냐 매국이냐’ 하는 단순 이분법적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집권 핵심 586세대의 일천한 역사관과 문 대통령의 아집이 맞물려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외교 국난(國難)에 빠져들고 있다. 문 대통령 ‘복심’이 원장으로 있는 여당의 민주연구원이 ‘반일운동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내부 보고서를 낸 것을 보면 국가 미래보단 정권 연장이 더 중요한 듯하다. 나라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고 세계 최빈국 북한과 협력하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비현실적 발상의 종착지는 구한말 역사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