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근대 화장용품 상설 전시장에서 유물들을 소개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유상옥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고교 때 혼자 신문보급소 운영
특유의 마케팅… 구독자 5배로
동아제약 입사뒤 37세에 임원
약국과 직거래로 ‘박카스 신화’

1988년 코리아나 화장품 창업
현금거래·제값받기 전략 주효
5년만에 매출기준 업계 3위로

문화공간 ‘스페이스 씨’세운뒤
다채로운 전시회로 예술 전파
각종 박물관에 소장품 기증도

화장품 용기 디자인 등 구상때
높아진 심미안 덕분에 큰 도움

“작품 속 여성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동서고금 여성들의 옷차림, 화장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미의 기준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우리 시대의 참된 ‘미(美)’는 어떤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는 8월 28일 김포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에는 동서고금의 미인들이 운집한다. 물론 살아 있는 미인들이 아니고 그림 속 미인들이다.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은 김포에서 10월 13일까지 개최하는 미인도 전시회인 ‘자인(姿人)-동서양의 근·현대 미인도’전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유 회장은 이미 화단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컬렉터다. 코리아나 미술관(관장 유승희)이 지방을 돌며 개최하고 있는 미인도 전시인 ‘자인(姿人)’전도 모두 그가 수집한 작품들로 이뤄진 전시다. 지난해에는 경북 안동과 충남 청양 2곳에서 열렸고, 올해는 경기 김포에 이어 전남 여수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유 회장은 ‘문화’를 ‘경영’에 접목한 대표적인 CEO다. 유 회장의 문화경영에 대해 들어봤다.

“내 사무실에 방문한 이들은 110㎝가 약간 넘는 아담한 키에 하얀 대리석 몸을 지닌 어여쁜 여인을 만날 수 있어요.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의 8등신 몸에 거울을 들고 다른 손에 머리채를 감싸쥐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태가 여간 곱지 않죠. 샤를 고티에(Charles Gauthier, 1831∼1891)의 ‘르 마르탱(Le Martin, 아침)’이라는 작품입니다.”

유 회장의 집무실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 씨(space * c)에 있다. 스페이스 씨의 c는 코리아나(coreana)와 문화(culture), 공동체(community)의 복합어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조화와 창조를 위한 문화경영을 상징한다. 유 회장은 집무실의 수집품들을 간단히 소개한 후 문화경영의 요체부터 설명했다.

“50여 년에 가까운 유물 수집과 30년의 기업 경영을 하면서, 국가의 힘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문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경제 대국의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문화를 창조하는 데는 소홀해 아쉬움이 많죠. 저희 코리아나 화장품이 ‘문화경영’에 주력하는 것도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고 국격을 높이기 위한 바람이죠.”

유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편의 성공신화다. 그 같은 성공을 자산으로 유 회장은 ‘문화경영’의 정도를 걸을 수 있었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의 사업감각은 신문보급소 운영 시절부터 발휘된다. 유 회장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신문보급소를 맡아 직접 운영했다. 유 회장 특유의 경영과 마케팅 기법은 신문보급소 운영과 무관하지 않다.

신문보급소를 처음 운영할 때는 독자가 100곳이었고 혼자서 배달을 했다. 천리길도 한걸음. 배달을 마친 후에는 신문을 안 보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구독 부수를 늘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독 부수는 200부, 300부를 넘어 500부에 다다랐다. 단시간에 구독 부수를 5배로 끌어올린 것이다. 신문보급소 운영은 동생 선일 군의 도움으로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아제약에 입사할 때까지 계속됐다.

“새벽잠을 설치고 학교 종례도 끝마치지 못한 채 신문을 돌려야 했고, 거기서 고객(독자)에게 제시간에 상품(뉴스)을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배웠습니다.”

1959년 동아제약에 입사한 그는 37세의 나이에 임원 승진(영업 상무), 자회사인 라미화장품 대표 그리고 1988년 코리아나 화장품 창업으로 이어지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그 같은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아제약 시절의 박카스다.

영업상무로 재직하던 시절 박카스 판로에 고민하던 유 회장이 내놓은 해결책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약국과 직거래하는 것이었다. 대도시의 큰 약국들에는 직거래로 제품을 판매하고, 거리가 먼 곳이나 소규모 약국들은 도매상을 경유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병행했다. 직거래 약국에는 DSC(Dong-A Sales Circle)라는 간판을 제작해주고 부착하도록 했다. 유통 마진이 축소되면서 이윤이 늘어났는데 직거래 약국들도 같은 혜택을 봤다. 판매량도 증가해 한 달에 5000만 병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그의 집무실에는 박카스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집무실을 찾는 이들에게 우선 박카스부터 한 병씩 건네준다.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해서도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을 든다. 첫해 14억 원에 그쳤던 매출이 5년 만에 1340억 원으로 급성장, 화장품 업계 3위로 진입했다.

“외상이 아닌 현금거래를, 할인판매가 아닌 제값 받기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현금이 도니까 자금 사정이 좋아졌고, 외상이 없으니까 채권 회수에 드는 일손을 덜었죠. 특히 할인을 하지 않아 ‘코리아나는 품질은 좋은데 조금 비싸다’는 인식이 생겨 고급품이라는 이미지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사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오면서 유 회장이 도덕적으로 흠집없는 경영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미술품 컬렉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 같은 취향이 후일 문화경영으로 활짝 꽃피었다.

그는 동서양의 미술품부터 우리 전통 공예품까지 50여 년에 걸쳐 수천여 점의 작품을 직접 구입해 왔다. 그리고 코리아나 화장품의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인 스페이스 씨를 2003년 강남구 신사동에 건립했다. 스페이스 씨는 지하 2층, 지상 7층, 옥상공원으로 건축됐다. 지하 1층과 2층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코리아나미술관으로 구성하고, 지상 5층과 6층은 한국전통 화장문화를 전시하는 화장박물관으로 꾸몄다.

현재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는 소장품 테마전 ‘동의보감으로 지킨 젊음’전이 열리고 있다. ‘동의보감 갑술내의원교정영영개간본’ ‘백자청화 화장용기’,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놓은 퇴발낭, 향갑노리개 등의 유물이 11월 9일까지 전시된다. 유 회장의 작품 수집 취미는 기업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전통 미술품과 민속품 등을 꾸준히 접하다 보니 어느새 심미안이 높아져 디자인을 선별하는 능력이 생겨났죠. 특히 화장품 용기의 디자인 등을 평가할 때 도움이 됐고요. 이는 정서적 만족감뿐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직접적으로 플러스가 됐으니 일석이조의 값진 취미생활이 됐습니다.”

유 회장의 수집벽이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유명한 사례가 있다. 라미화장품 대표 시절 개발해 히트한 브랜드인 ‘라미벨’ 역시 해외 출장길에 구입한 ‘종’에서 착안한 것이다.

유 회장은 글 쓰는 CEO로도 유명하다.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한 이후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펴낸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는 경영수필집을 포함, 지난해 11월 펴낸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권의 책을 펴냈다. 그중에는 강신호(동아제약 회장), 유상옥 공저 ‘우리들의 10년’(1986)과 조부 순재공의 일대기를 담은 ‘순재선생실기(純齋先生實記)’(2010)도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유 회장은 한국수필가협회 수필문학상(2003)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부터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직을 맡아 수필문학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유 회장은 기업가·박물관인·문필가로서 1인 3역을 해내는 우리 시대 신(新) 삼절(三絶)”이라며 “슬하의 유승희 관장 역시 훌륭한 박물관·미술관인으로 키워내 관계자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지난해 펴낸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많은 분이 물기(物氣)를 드높이고 문기(文氣)도 함께 높이길 바란다”며 “박물관, 미술관을 자주 가보며 문물(文物)을 가까이 두는 삶이 바로 문화인의 삶이기 때문이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의 나눔 정신은 소장품 기증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많은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과 스페이스 씨, 모교인 덕수상고 백년관, 고향인 청양 상갑리 농업박물관, 백제문화체험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급기야 2017년에는 개인 유물 4826점을 코리아나 화장품 법인에 기증했다. 지난 50여 년간 개인적으로 모아온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유물로 화장 도구를 비롯해 도자기, 장신구, 복식, 고문서와 회화 등으로 방대하다.

“저는 30년의 직장생활 후 30년을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한 CEO로 활동하며 국내는 물론 외국에 나가서도 그림과 유물 등 여러 작품을 수집해 왔습니다. 50년 넘게 모아온 작품만 수천 점에 이르고 수집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서울 강남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의 참모습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미를 보여줌으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인터뷰 = 이경택 문화부 부장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