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여홍철 경희대 교수가 지난 5월 KPGA 코리안투어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 대회에서 드라이버 샷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체조 전설’ 여홍철 경희대 교수

1995년 생애 첫 라운드서
준비한 공 30개 다 잃어버려
대학선수들과 함께 훈련 계기
한달만에 100돌이서 싱글로

공식 핸디캡 8·베스트 1오버
야구에 빠져 연습 소홀해도
최근 프로암 팀경기서 우승
“골프, 체조보다 예측 어려워”

요즘 예능 방송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체조 전설’ 여홍철(48) 경희대 교수는 여느 스포츠 스타 출신처럼 골프에도 남다른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여 교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체조 도마 은메달리스트다.

지난 19일 경기 수원의 경희대캠퍼스에서 여 교수를 만났다. 사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 대회에서다. 당시 여 교수는 대회 셀럽으로 참가해 김태훈 프로와 짝을 이룬 팀 경기에서 20언더파로 우승했을 때였다. 여 교수는 첫날 김 프로와 11언더파 61타를 기록해 공동 선두로 나서더니 둘째 날에도 9타를 더 줄여 우승했다. 그는 우승 후 “사실 야구에 빠져 골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올해 세 번째 나온 라운드였다”고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 교수가 참가만 해도 영광이라는 셀럽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이 뛰어난 파트너를 잘 만났고, 파트너가 실수할 때마다 여 교수가 버디나 이글을 하며 만회한 게 주효했다. 그는 특히 스피드(스팀프미터 3.5)가 빠른 그린에서 버디를 여러 차례 잡아내 우승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국가대표 시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듯, 타이틀이 걸리면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여전함을 입증했다. 그는 오히려 파트너 김 프로에게 실수로 예민해졌을 때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라”고 조언까지 해주기도 했다.

여 교수의 공식 핸디캡은 8(80타)이지만, 칠 때마다 들쑥날쑥한 편이다. 어떨 때는 야구 스윙이 나오기도 한다. 여 교수는 아마야구에 빠지면서 골프를 6년 정도 접기도 했다. 지난해 봄부터 골프를 다시 시작하며 야구와 병행하고 했다. “진짜 취미가 야구”라는 그는 7년째 사회인 야구에서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여 교수는 “체조의 기본인 균형 감각과 몸 회전 능력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서 “체격이 크지 않아도 집중력이 뛰어나고 몸통 스윙을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여 교수는 한창때 드라이버샷을 300m 정도 날렸다고 한다. 요즘도 250m를 넘나드는 장타에 동반자들이 때론 깜짝 놀라곤 한다. 한 번은 캐디가 그의 키(165㎝)를 보고 티샷을 쳐도 된다고 해서 300야드가 조금 넘는 파 4홀에서 친 볼이 원 온 되기도 해 앞 팀에게 달려가 사과한 적도 있다.

여 교수는 “학기 중에는 학교 수업과 각종 체조 대회에 경기위원이나 대회관계자로 나서다 보니 골프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치기조차 빠듯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예상을 뛰어넘는 실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여 교수는 “잘 쳤을 때 기억을 떠올리면서 샷을 준비한다”면서 “그러면 오래 걸리지 않아 비슷한 수준으로 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조 선수들은 팔이 굽었는지, 발목을 쭉 폈는지 등 다른 사람 동작을 사진 찍어 놓은 것처럼 세밀하게 기억하고 모방하는 능력이 다른 종목보다 탁월한 편이라고 말한다.

여 교수는 2005년 은퇴 후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이 전에는 1995년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을 갔다가 쉬는 날, 현지 교민 덕에 골프를 처음 접한 인연이 있다. 훈련이 없는 날 현지 교민 초대로 얼떨결에 동네 퍼블릭 골프장에 가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선수와 교민 각 4명씩 나갔다. 그는 호기심에 처음 잡고도 만능 스포츠맨답게 곧바로 골프 스윙을 얼추 따라 했을 정도다. 준비해 간 골프공 30개를 3홀을 남겨놓고 다 잃었다. 그는 선수생활에서 은퇴하고 박사과정 이후 경희대 교수에 오를 때까지 골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배구 국가대표였던 장윤창 선배를 따라서 국내에서 한 수입자동차 회사가 주최한 아마추어골프대회에 첫 라운드를 나갔다. 팔심이 세 공을 멀리는 보냈지만, 방향성이 문제였다. 치는 족족 OB가 나기 일쑤, 100타를 넘겼다. 이후 골프를 제대로 배우자는 취지에서 집 근처 연습장에 찾아가 레슨비까지 내며 등록을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보다 볼을 잘 맞히니까 프로가 건성으로 알려주는 등 성의가 없어 아예 연습장 발길을 끊었다.

여 교수는 100타를 갓 깼던 시절, 골프에 대한 전기를 맞게 됐다. 학교 측에서 골프 선수들을 위한 스트레칭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 동계훈련하던 필리핀으로 갔던 것. 한 달 동안 경희대 소속 골프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골프가 확 늘었다.

골프에 대해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지만, 선수들이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흡수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선수들과 함께 매일 치다시피 했더니 한 달 만에 70대 타수를 칠 정도로 기량이 좋아졌다. 여 교수의 베스트 스코어는 1오버파 73타. 경기 여주의 스피아그린CC에서 한 골프 모임 때 메달리스트를 했다. 이전까지 70대 후반과 80대 중반 타수를 오가던 무렵이었다.

여 교수는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그는 자녀들을 힘든 운동선수 대신 평범하게 키우길 원했다. 첫째 딸은 중학교 때 컬링을 하려다 컬링부가 없어지는 바람에 운동을 접고 평범한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둘째 딸(여서정·17)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현재 체조 국가대표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여자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건 한국 체조의 기대주다. 여 교수는 둘째 딸에 대해 자신의 세월을 거꾸로 돌려놓듯, 어렸을 때의 판박이였다는 얘기를 한다.

여 교수는 “체조나 다른 기록 종목은 큰 실수만 나오지 않는다면 우승권 선수를 늘 예상할 수 있지만, 골프는 예측불허다. 이런 게 골프의 매력이다. 때론 실망스러운 결과도 나오지만, 늘 시작 전부터 기대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