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과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5개 경제단체가 일본 정부에 각각 전달한 한국 수출 규제 관련 의견서는 표제는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수출 규제 조치가 부당한 이유나 경제 협력의 당위성도 대동소이했다. 한국 경제단체들이 비슷한 정책 건의를 따로 보내는 걸 보면서 일본 정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똑같은 사안을 놓고 한국 경제단체들이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5개 경제단체가 일본 정부에 보낼 의견서를 꾸릴 때도 전경련은 처음부터 배제됐다. 23일 비공개회의에 전경련 자리는 없었다. 경제단체들도 전경련을 ‘패싱(배제)’한 것이다. 앞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따로 또 같이’ 입장을 내놓았다.

전경련 홀대가 안타까운 것은 일본 경제 보복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전경련은 일본과 두터운 인맥을 맺고 있는 ‘일본통’으로 분류된다. 한·일 간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전경련의 역할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5개 경제단체도 당장 민간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일본 접촉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가장 오래된 대일(對日) 네트워크를 보유한 전경련을 배제한 채 대외 접촉 활동을 벌이는 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한국 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다. 민관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야 하는 시국에 벌어진 전경련 패싱에 대해 한국무역협회 등은 “‘고단위 정치적 처방’은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경제단체의 역할은 재계 현안에 대한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정치적 셈법을 전제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정부 눈치만 살핀다면 대응 의지나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분이다. 사분오열한 한국 재계 단체의 의견서가 일본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권도경 경제산업부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