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3일 오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Y-9 정찰기. 자료사진

- 러 전략폭격기, 독도영공 침범

中2대, 서해 카디즈 진입뒤 이탈
다시 동해쪽 진입한뒤 빠져나가
이후 러2대와 함께 총 4대 남하
또다른 러 폭격기, 韓영공 침범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구도 속
한반도 무대로 무력과시 주목

이미지 크게보기

23일 오전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동해상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은 물론 대한민국 영공까지 침범하면서 한반도가 미·일 대(對) 중·러 간 ‘무력시위’ 공간으로 이용되는 등 동북아 위기가 고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이 올 들어 수차례 KADIZ를 들락날락한 상황에서 러시아 군용기까지 영공을 침범한 것은 처음이어서 향후 유사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란 호르무즈 해협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미·중의 전략 경쟁이 더욱 본격화되면 한반도가 양측의 힘이 충돌하는 ‘핫 스폿’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반도 강대국 간 무력시위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북 간 실무협상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3시간 12분’ 도발 =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중국·러시아 군용기 5대는 이날 오전 6시 44분 중국 군용기 2대가 북서방 KADIZ에 최초 진입한 이후 상황이 종료된 오전 9시 56분까지 3시간 12분 동안 우리 영공과 KADIZ를 들락날락했다. 특히 러시아 군용기 1대는 독도 영공을 2차례나 침범했다. 러시아 군용기 1대는 오전 9시 9분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가 한국 공군의 차단기동 및 경고사격에 오전 9시 12분 이탈, 다시 오전 9시 33분 2차로 영해를 침범했다. 이 군용기는 4분 뒤인 오전 9시 37분 독도 영공에서 빠져나갔다.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KADIZ를 침범한 것도 5차례에 달했다. 중국 군용기 2대가 오전 6시 44분 북서방 KADIZ에 진입한 뒤 오전 7시 49분에 한 차례 더 침범했고, 오전 8시 40분에는 러시아 군용기 2대와 함께 울릉도 북방 KADIZ로 재진입했다. 군은 중국·러시아가 연합 훈련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KADIZ 및 영공을 침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 발표를 종합하면 중국 군용기 2대의 항로는 이어도 북서방에서 시작해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침범 →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 러시아 군용기 2대와 합류 → 울릉도 북방 약 76마일 근방에서 KADIZ 재진입 → 울릉도 남방에서 퇴각한 것으로,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1차 우리 공군의 차단기동에도 불구, 다시 독도 영공에 진입한 것도 이번 사태가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대미 경고 성격에 한·미·일 3각 협력 ‘틈’도 노린 듯 = 중국·러시아의 이번 침범은 한국보다는 미국·일본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미·일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한반도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간접 경고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지난 6월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최근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점을 중국이 감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성동격서’ 성격도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을 견제하는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행동을 반대하는 중국이 동북아에서 판을 벌이는 방식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에도 평화헌법 수정 등을 통해 일본 재무장화를 시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점도 중국·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움직인 이유라는 풀이도 나온다. 한·일 관계가 최악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한·미·일 3각 협력이 삐걱대는 상황을 중국이 활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일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연합해 동해상에서 훈련을 실시한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러시아 군용기가 한반도 영공을 침범한 것이 의도적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최근 관계 강화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등에서 ‘역할’을 추구하고 있는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동북아에서 중국과 연계해 미·일 및 한·미·일 3각 협력에 대응하겠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향후 유사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외교가의 전반적 전망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에만 8차례에 달한 중국의 KADIZ 침범을 묵인해온 것이 결국 이 같은 사태를 낳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한·일 관계 악화로 한·미·일 3각 협력에 ‘틈’이 생긴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러시아에 편승, 3각 동맹을 강화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보영·정충신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