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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힌 몸 / 염운옥 지음 / 돌베개

“이성의 승리가 비이성적 믿음들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 계몽주의 시대에도 인종차별주의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이성적인 믿음을 ‘이성적’으로 보이게끔 만들고 ‘개념적’ 언어로 다시 표현하며 그 믿음들에 부족했던 일관성을 부여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1949~2007)는 저서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인종차별이 문명사회인 현대사회에서도 계속 자행되고 있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대’에 뽑힌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 한현민(18)은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차별과 혐오 문제가 심각해진 가운데 우리 안의 차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출간됐다. 10여 년 전 박사 논문 주제였던 우생학을 연구하며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겨 제한을 두는 발상에 분노, 인종차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저자는 인종주의의 개념 정립부터 나선다.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두개골, 혈액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몸에 대한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인종화의 속성이다.”

그러면서 혈통을 의미하던 인종이 어떤 연유로 인간의 하위 범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한 린네의 명명법과 흰 그리스 조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던 빙켈만의 미학이 어떻게 백인우월주의 신화와 인종화를 만들어냈는지 인종주의 역사를 풀어낸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는 가운데 문화적인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 현상에 주목한다. 신인종주의는 문화적인 요인들이 더해져 작동하는 인종주의다. 특히 마지막 장 ‘한국에서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가기’에서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혼혈인, 이주민, 난민의 삶을 통해 외모, 말투, 옷차림에 문화적인 요인이 덧대져 그들을 위협집단으로 고착화하는 데 우리 역시 동조자였음을 확인해준다. 그러면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해법으로 두 가지를 제공한다. 우산 ‘말하고 듣는 행위’에서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농담처럼 던지는 사소한 말 속에 차별과 혐오가 깃들 수 있으며 귀 기울여 들어주는 자세야말로 주체와 타자를 이어주는 끈이다. 또 제도 개선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저자는 ‘공감’을 역설한다. “심보선 시인의 ‘외국인들’에 나오는 시구처럼 우리에게는 ‘선행과 상관없는 동행’ ‘동정이 아닌 동행’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448쪽, 2만 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