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월요일 오전, 출근해 메일함을 열었습니다. 받은 편지함에 2만 개가 넘는 읽지 않은 이메일이 쌓여 있었죠. 4월부터 석 달간 정리하지 않은 흔적이었습니다. 큰마음 먹고 최근 한 달 치 메일만 남겨두고 모조리 지웠는데요. 17일 오전 9시 현재 제 받은 편지함에는 고작(?) 6997개의 메일만 남았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니 하루 평균 230개의 메일이 오는 셈인데요. 그중 어제 하루 제가 열어 본 메일은 10개 남짓이었습니다. 나머지 메일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저도 모르게 놓치고 있는 어떤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 탓이죠.

그 많은 메일이 다 어디서 오냐고요? 물론 보도자료입니다. 채널과 플랫폼이 늘어나고 콘텐츠가 화수분처럼 쏟아지며 이를 알리기 위한 보도자료도 우후죽순처럼 제 메일함을 채우고 있는 거죠.

그중 취재기자에게 ‘간택’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물론 보도자료의 주체나 내용입니다. 대중문화를 취재하는 제 기준으로 본다면,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 혹은 ‘기생충’과 관련된 자료는 꼭 챙겨봐야 할 메일이죠. 여러 이슈의 중심이었던 YG 혹은 배우 강지환의 소속사에서 보내는 메일 역시 우선적으로 열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보도자료들은, 보다 매력적인 제목으로 기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을 벌입니다. 메일의 제목 한 줄에 별다른 ‘건더기’가 없으면 넘기기 일쑤고, 막상 열어본 후 기사 가치가 없는 내용이면 ‘낚였다’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죠. 가끔은 홍보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낚시성 메일은 보내지 말라”고 항의하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요. 요즘 대중은 기사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생산되는 기사량은 약 5만 건. 1분당 약 35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셈이죠. 그중 포털 메인 화면에 걸리는 기사의 개수는 200~300개 정도인데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 언론사와 기자들은 경쟁하죠. 이슈는 뻔하고, 특종을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같은 내용을 좀 더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포장할 제목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이는 결국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며 ‘기사화(化)’를 부탁하는 홍보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슈를 좇아서 ‘Ctrl+C’ ‘Ctrl+V’를 반복하며 대동소이한 기사를 생산하고,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가 곧 대중의 관심사라는 미명 아래 검색어에 기반한 기사를 배설하듯 쏟아내는 매체가 적지 않은데요. 수북이 쌓인 2만 개의 메일을 정리하며,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정리돼야 하는 재고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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