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61년 ‘타임’지의 표지로 제작된 로버트 비크리의 ‘JD 샐린저 초상’의 합성.(워싱턴 DC 국립초상화갤러리 소장) 작은 사진은 민음사에서 샐린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출간한 ‘호밀밭의 파수꾼’ 표지. 자료사진

- 작가 JD 샐린저 탄생 100년

작가 체험 소재로 쓴 성장소설
68년된 작품… 여전히 인기
전 세계에서 7000만부 팔려
청소년문화 아이콘 자리매김

민음사 2001년 저작권 계약
최근 美원작 표지로 다시 펴내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 아이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꼽히는 미국 작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 16일은 작품이 나온 지 68년째 생일, 올해는 작가 탄생 100주년이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부 안팎이 팔렸으니 세계인이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왜 16세 청소년 ‘홀든 콜필드’(주인공)의 반항과 방황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매혹될까.

저작권 단독계약을 통해 2001년부터 세계문학전집 중 ‘호밀밭…’을 출간해온 민음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집 320종 중 ‘호밀밭…’이 55만 부가 팔려 전체 1위를 마크했다. 민음사가 작가 탄생 100년을 기념해 1951년 초판본의 표지를 살려 최근 펴낸 1만 부 한정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예스24의 영미소설 분야에서는 올 2월과 5월에 한 차례씩 주간 베스트 2위에 오를 정도로 여전히 사랑받는다.

국내에서는 1963년 평화출판사라는 곳에서 처음 번역본이 나왔다. 그해 3월 5일자 동아일보 2면에 전단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기에 10여 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호밀밭…’을 출간했으니 국내 누적 판매 부수는 수백만 부로 추정할 수 있다. 1991년 첫 서울대 직선 총장을 지낸 영문학자 김종운(1929∼2000) 교수가 1960년대에 영문과에서 한 ‘호밀밭…’ 강의는 기억하는 제자들이 많다. 한국에서 그만큼 인기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유일하게 ‘호밀밭…’에는 저자의 사진이 없다. ‘은둔형’ 저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샐린저는 유일한 장편인 ‘호밀밭…’ 이후 몇 편의 단편소설을 내고는 1953년부터 뉴햄프셔의 작은 읍인 코니시의 농장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1980년에 한 지방지 기자가 그를 찾아 만난 기사가 크게 화제가 될 만큼 베일에 싸인 샐린저의 삶은 작품을 더욱 숭배하는 독자들을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그는 2010년 1월 29일 91세로 사망했다.

‘콜필드 신드롬’이란 용어는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질풍노도’ 세대들의 기성세대의 위선에 대한 반항과 냉소를 가리킨다. 왜 청소년들은, 또 청소년기를 거치며 ‘호밀밭…’을 읽었지만 지금은 기성세대가 된 사람들도 콜필드의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호밀밭…’은 처음으로 ‘청소년 문화’의 탄생을 알린 소설이다. 대중문화평론가 박은석 씨는 “2차대전 이전에는 서구에서도 청소년 노동이 일반적이었을 만큼 그들은 가려진 존재였지만, 전쟁이 끝난 후 최강의 경제 대국이 된 미국은 장기호황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등장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처음 청소년 복지와 고등교육이 일반화됐다”며 “‘호밀밭…’은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 뒤 처음으로 그들 세대의 고민을 담아낸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는 “홀든 콜필드란 이름은 뒤를 잇는 앨런 프리드의 세계 최초 로큰롤 공연(1952), 영화에서는 10대 폭주족을 다룬 말론 브랜드의 ‘와일드 월’(1954), ‘영원한 반항아’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의 등장을 이끌면서 전 세계 청소년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딘 역시 콜필드의 아우라가 옮겨져 청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문학자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는 “이 소설은 1950년대 중반과 후반 미국의 젊은이들의 반체제 운동인 이른바 ‘비트 운동 (Beat Movement)’의 효시”라며 “학교에서 뛰쳐나온 후 뉴욕 매디슨가를 부유하는 콜필드의 방황은 현대사회의 부패하고 상업적인 모든 규범과 가치,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를 부정하는 비트 세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성세대와 질서에 대한 반항은 사라질 수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호밀밭…’의 생명력이다. ‘기성세대’라는 위선적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아이 적의 순수를 지키고 싶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나는 콜필드 세대는 물론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꿈인 것이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