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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김연수 소설가가 2008년 6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2009년 그의 작품 9편을 묶어 출간한 단행본(문학동네)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스물다섯의 ‘나’는 어느 날 도서관 벽에 붙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시에 끌려 도서관 시모임 ‘함시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시를 쓴 시인의 스승 김희선 할머니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시인이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끝내 자기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이 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이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현실에선 겨우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 나무까지 갔다 돌아온 시인이 그 나무 아래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묻어 뒀다는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은 편지를 직접 그녀에게 전하기로 한다.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소설 속 구절처럼,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타인의 삶과 나의 삶, 우리의 삶과 별것 아닌 사소한 세상의 일들이, 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과 우연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흘러간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보내던 젊음의 한 시절, 지루한 장마, 이뤄지지 않은 시인의 사랑과 시, 그리고 빙하기에 멸종됐다가 1943년 중국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돼, 한국으로 건너와 한 시인에게 ‘세계의 끝’이 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맞물려 풀려 나가던 톱니바퀴는 결국 ‘나’의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만, 소설은 또 다른 톱니바퀴가 되어 읽는 모든 이의 잊어진 기억과 상처와 기쁨을 소환한다. 시간과 함께 사라진 것 같지만, 어디엔가 세월 속에 흔적을 남기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소설의 제목은 일본의 1인 밴드 ‘World’s End Girlfriend’에서 따왔지만 실제로 작가는 스페인 밴드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의 ‘La Mitad De Nuestras Vidas(우리 삶의 절반)’를 듣다가 이 작품을 썼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