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최일선에서 맞서야 할 산업통상자원부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주장을 폈다가 되레 역공 빌미를 주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산업부의 역량과 기강이 얼마나 한심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일본 정부는 이달 1일 수출 규제 발표 직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화학물질 관리를 둘러싼 한·일 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6월 회의를 추진했지만 일본 담당 국장이 공석이어서 열지 못했다고 바로 반박했다. 일본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9일 “명백한 사실 오인”이라며 당시 실무 간부 이름까지 공개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산업부는 “착오”라고 변명했다.

낯뜨거운 망신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대국의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 심지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지경이라면, 협상 결과는 뻔하다. 경제력 및 산업 경쟁력 격차를 생각하면,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몇 배 더 철저히 해도 이기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백전백패를 자초하는 행태다. 예고된 사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강제징용 판결 직후인 지난해 11월 불화수소 수출이 사흘간 중단됐고, 지난 3월엔 재무상이 보복 얘기를 했다. 구체적 내용도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임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산업부에 물어보라 했고, 산업부는 기업 임원들을 불러놓고 “일본에 지사도 있을 텐데 사전에 파악 못했나”고 따졌다.

산업부는 뒤늦게 일본에 양자 협의를 요청했지만, 일본 측으로부터 “협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을 상대로) 실무급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방침”이라는 모욕적 반응이 돌아왔다. 산업부는 9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것을 ‘큰 성과’처럼 내세우지만,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 산업부와 통상교섭본부가 세종시에 있어 공무원들이 세계 정세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일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이지만 이번 헛발질의 책임 소재를 엄정히 따져야 한다. 장관 지휘 책임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