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도외시한 주 52시간 근무제의 무차별 강행에 따른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급기야 국내 연구·개발(R&D) 경쟁력이 붕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우려까지 제기됐다. 선진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추격형’에서 벗어나 ‘선도형’으로 가야 하고, 여기에는 세계 최고의 R&D 수준이 필수적이다. 개별 기업들의 기술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초격차’ 유지를 위해 각 기업이 사활을 걸고 뛰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52시간제 때문에 밤이 되면 연구소의 불을 꺼야 하게 됐다. 블랙코미디도 넘어 미래를 짓밟는 것으로, 정치권력에 의한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4만 개가 넘는 기업 연구소가 참여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정책과제 27건을 선정했으며, 곧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4일 밝혔다. 산기협은 “주 52시간제가 R&D까지 적용되면서 R&D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긴급 이슈 발생 시 대응이 어렵고, R&D 집중도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산기협은 “특례업종에 추가해 달라”면서 “그게 어렵다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라도 1년으로 늘려 달라”고 호소했다.

미국·일본 등 많은 선진국은 전문직과 고소득 사무직 등에게는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글로벌 현장은 전쟁터인데, 한국만 딴세상에 살고 있다”는 하소연을 외면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인공지능(AI)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는데, 불 꺼지는 연구실 문제를 해결 못하면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