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일 한국을 향해 무역 보복 절차를 발표함으로써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초유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사 문제 등 갈등은 상존했지만, 정부 차원의 실력 행사로 들어간 적은 없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보도된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對韓) 전략이 근원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인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경제대국으로서, 독일과 비교해 잘못에 대한 반성이 크게 부족한 과거 침략국으로서, 옹졸하고 나쁜 접근법이다.

그러나 국가 간의 관계는 이런 명분보다 현실이 압도한다. 일본이 100가지 준비된 보복 조치 중 2개를 꺼냈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의 잘못과 별개로,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실효성도 없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최우선 대책으로 거론된다. 정부 내에서도 ‘대책 없는 대책회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속수무책이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배상 판결 직후부터 적절한 시정 조치를 요구하며 보복 조치도 예고해 왔다. 그런데도 지난 8개월 동안 수수방관했다. 막상 보복 조치가 현실화하자 고작 주한일본대사 초치,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책회의뿐이었다. “보복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던 강경화 외교장관도, 반일(反日) 정서를 자극했던 청와대도 뒤로 빠졌다.

문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응은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국내 현안들을 덮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도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런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 국익과 안보가 파당적 계산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지켜져야 한다.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30일 내린 판결은, 한국 입장에선 통쾌할 수 있으나, 일본 입장에선 기본조약 파기라고 볼 여지도 크다. 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와, 대법원 ‘관련 판결’ 지연을 적폐로 몰아 처단한 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각오로 아베 총리와 담판에 나서야 한다. 실권도 없는 하위 기관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