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예나 영이 참여한 베네치아관의 모호한 베니스(설치) 일부.
강박관념 탓 전체주의적 느낌
편하고도 강한 전달력 아쉬워
백남준(1932∼2006)과 임영방(1929∼2015) 등의 막후노력으로 1995년 개관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첫해부터 전수천(1947∼2018), 1997년 강익중(59), 1999년 이불(55)이 3연속 특별상을 수상하고, 2015년에는 임흥순(50)이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그런지 “비엔날레는 경쟁하고 등수를 매기는 올림픽과 다르다”는 백남준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혹시 수상을’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올해도 은근히 기대했지만 수상 소식은 없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광주비엔날레 대표 김선정(54)인 탓에 내심 기대도 했지만, 한편 그 때문에 수상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미 수상의 기대와 함께 실패에 대비한 핑계, 즉 자위책을 마련해뒀다는 고백이 적절할 것이다.
올해 한국관은 소설가 이민진(51)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인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를 주제로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된 여성주의를 주로 다루는 남화연(42)의 식민과 냉전 속 국가주의 속에서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삶과 처지를 다룬 ‘반도의 무희’, 제주 태생으로 어려서 덴마크로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39)의 설화 ‘바리데기’를 바탕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의 ‘이산’을 다룬 영상작품 ‘이별의 공동체’, 그리고 여성국극을 소재로 꾸준히 작업해 온 정은영(45)이 극에서 남자역을 맡아온 옥당 이등우를 통해 젠더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예술감독을 맡은 김현진(44)의 주제와 작가선정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그래서 수상을 더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는 “비판적 젠더 의식을 통해 한층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시각 서사를 제공하겠다”고 자신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한국관은 건축허가 시 “바다가 보여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외부와 통유리창을 통해 이어지는 개방된(?) 공간이다. 따라서 전시연출 즉 공간구성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디오, 영상물로 구성된 작가, 작품을 택했다면 보다 극적인 연출을 통해 서사와 스펙터클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이런 취약한 공간에 대한 고려 없이 사방이 흰 벽면인 미술관과 다름없는 전시연출은 위험했다. 페미니즘이란 주제의 공통점으로 하나가 되는 동시에, 각각의 작품들이 독자적·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면 아주 극적이었을 텐데, 결국 좋은 주제와 남다른 작품에도 불구하고 ‘평년작’에 그쳤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하지만 한국관에선 큐레이터의 개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들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큐레이터의 겸양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천양지차다. 특히 페미니즘을 다룬 첨예한 현대작품들을 선민의식을 지닌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무지한 백성들을 일깨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작품을 너무 어렵고 무겁게 만들어 오히려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어렵고 무거운 작품을 편하고, 쉽게 그리고 분명하고 강하게 전달하려는 시도와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본 전시에 참여한 이불과 강서경(42)의 작업도 다른 작품들에 묻혀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다. 더 적극적으로 적정한 장소를 택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카 리(48)의 현대미술을 인식론적, 감각적으로 재구성하는 무거움을 서정성으로 감싸 안정감을 줬다.
또 ‘스와치 페이시스’에 참여한 도로시 M 윤(43)의 블링 블링한 색동작품이나 베네치아관에 ‘모호한 베니스’를 설치한 플라스티크 환타스티크의 일원인 예나 영(37)을 만나 한국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허전함을 채웠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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