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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에서 ‘고잉 포스털(Going postal)’은 지난 세기 말에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우체국 가기’ 정도로 해석되지만, ‘극단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발화하기 직전의 분노’를 가리킵니다. ‘특히 직장 내에서’라는 설명이 더 붙습니다. 우체국이나 집배원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호감과 신뢰를 주는 직장이고 직업입니다. 기다리던 소식이나 연애편지를 전해주던 집배원에 대한 추억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어쩌다 ‘우체국’이란 단어에 섬뜩한 의미가 담겨졌을까요.

2016년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마크 에임스 지음·후마니타스)의 원제목이 ‘Going Postal’입니다.

1986년 미국 텍사스주 집배원 패트릭 셰릴은 우체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벌였습니다. 셰릴은 10분간의 총격으로 15명을 죽이고 6명을 다치게 한 뒤 여자 친구의 애원으로 살인을 멈추고 자살했습니다. 한데, 이 다중 살인범의 장례식에 텍사스주 집배원들은 수많은 꽃다발을 보냈고, 동봉한 카드 중에는 “그가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내몰렸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겁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체국의 동료들은 “성실하고 친절했던 친구”로 그를 애도했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 직장에서 총기에 의한 다중살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유독 우체국에서 몇 건의 사건이 잇따랐으며, 직장 내 살인사건도 점점 증가했습니다. 앞서 말한 ‘고잉 포스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미국우정공사(USPS)는 안정된 연방 공기업이어서 선망받는 직장이었습니다. 리처드 닉슨 시절인 1971년 단행된 우체국의 민영화에 이어 1981년 레이거노믹스 출범 이후 더 험악해진 대규모 구조조정과 업무량 가중, 해고에 대한 불안으로 집배원은 점점 ‘극한직업’이 돼 갔습니다.

저자는 집배원의 살인사건을 분석하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살인범 대부분은 직장에서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돌변한 직장 환경에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번아웃됐고 상사의 ‘갑질’에 시달렸지만, 이를 호소하는 건 직장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이기에 침묵했습니다. 또 여타 범죄자들과 달리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3년 전 출간된 이 책을 다시 꺼낸 것은 2019년 한국 집배원들의 상황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집배원들은 올 들어서만 6월 현재 9명이 과로사로 보이는 이유로 숨졌고, 2008∼2017년 10년간 우정사업본부 노동자 166명이 업무상 질병과 안전사고 등으로 숨졌습니다.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주목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한국 상황에서 ‘총’ 대신 ‘파업’ 카드를 든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