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2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최근 다뉴브강에서 희생된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말로 부르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 내한 …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다”

63명 단원 ‘기다리는 마음’ 불러
서툰 한국말이지만 진심 전해져
노래 끝난 뒤 박수도 잊고 정적

조성진과 협연 감동 무대 선사
커튼콜만 여섯번 30분 연장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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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왔습니다. 최근 참담한 사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 사고로 많은 한국인이 희생됐습니다.” 그가 영어로 나지막하게 말을 꺼내자, 청중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이반 피셔(68·사진). 그는 35년간 이끌어 온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와 함께 콘서트를 하기 위해 왔다. 24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꽉 메운 2000여 명의 관객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헝가리 국민과 부다페스트 시민, 단원들과 저는 마음을 다해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공연에 앞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애도곡을 부르겠습니다.”

63명의 BFO 단원은 악보를 펼쳐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는 한국인 발음과 같진 않았으나 비교적 정확했고, 진심이 전해졌다. 침중한 표정과 슬픔에 젖은 목소리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한국 가곡을 피셔가 직접 골랐다는 게 롯데콘서트홀 측의 전언이다. 피셔와 단원들은 2절까지 부른 후에 잠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정지했다. 그 순간에 관객들도 박수를 잊고 다뉴브 강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해 묵념하는 것처럼 침묵에 들었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도 공연 프로그램북에 ‘추모의 글’을 실었다. “우리는 이 참사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밤, 음악이 저희 심정을 대변합니다. 음악을 통해 위로를 전합니다.”

피셔는 1983년 BFO를 창단한 후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10위권 악단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성장시킨 기록을 갖고 있는 명장이다. 피셔와 BFO는 이날 한국 관객들에게 내년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 곡들을 선사했다. 네덜란드 독립투사를 기린 ‘에그몬트 서곡’을 연주할 때 BFO 단원들은 스스로 영웅이 된 듯이 도취한 모습이었다. 연주 장면이 마치 군무와 같은 느낌을 줬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역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조성진은 2017년 같은 장소에서 정명훈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협연한 적이 있다. 5번에 비해 훨씬 서정적인 곡이어서인지 평소의 진중함을 좀 덜어내고 카덴차에서 25세 비르투오소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커튼콜을 여섯 번이나 했다.

BFO는 2부에서 베토벤이 가장 다양한 감정을 담았다는 평을 듣는 교향곡 7번을 펼쳤다. 예정된 연주가 끝났으나 끝없이 박수가 이어지자, 신나면서도 슬픔이 배어 있는 헝가리안 무곡 1번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줬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당초 오후 9시 50분쯤 끝날 예정이던 공연은 오후 10시 20분이 돼서야 끝났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