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보통 드라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옷이나 ‘빽’을 사준다. 남성 실장이 여성 사원을 백화점에 데려가 한가득 사주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선 여성 팀장이 여성 사원에게 ‘빽’을 주는 장면이 등장했다.

포털업체가 배경이다. 1위 포털 유니콘의 본부장인 배타미(임수정 분)는 청문회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검색어 조작 논란에 ‘아는 바 없다’ ‘그런 일 없다’고 해야 하는데, 위증하지 않으려고 국회의원 성추문 의혹을 터뜨렸다. 회사는 그녀를 내쳤고 그녀는 2위 포털인 바로의 TF팀장으로 옮아간다. 바로의 소셜본부장으로, 배타미의 앙숙이었던 차현(이다희 분)이 TF팀원으로 합류한다.

이 둘이 모두 여성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니콘의 나인경 대표(유서진 분)와 송가경 이사(전혜진 분)도 여성이다. 송가경을 쥐고 흔드는 KU그룹 회장도 여성이다. 검색어 조작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 본사를 대표해서 유니콘에 온 인물도 여성이다. 바로의 대표 정도만 남성일 뿐이다.

작정하고 임원급 이상 직위의 주요 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배치한 것이다. 배타미가 이끄는 TF팀 구성원도 여성 4명에 남성 2명이다. 극 중에서 최고 남성 웹툰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배타미 팀장이 여성 팀원과 함께 나섰다. 여성 팀원은 실수를 연발했고, 초라한 행색으로 웹툰작가에게 무시당했다. 이 웹툰작가는 여성 팀원에게 ‘번듯한 가방 하나 못 들고, 옷 하나 제대로 못 갖춰 입은 신입사원이 일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고 콕 집어 말한다. 그러자 배타미는 무례한 웹툰작가에게 면박을 주고, 돈 없는 20대가 무시 안 당하려면 꾸미기라도 잘해야 한다며 즉시 자신의 명품가방을 팀원에게 줬다. 드라마는 배타미가 팀원에게 건네주는 명품가방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줬다.

어색한 장면이다. 보통 남성들은 여성의 가방을 유심히 보지도 않고, 업체와의 회의 때 가방과 패션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가방이 번듯한지 안 번듯한지, 어떤 게 명품가방인지도 잘 구분 못 한다. 그런데도 굳이 남성 웹툰작가가 가방을 문제 삼은 건 배타미가 팀원을 보호하면서 가방을 건네주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한 설정으로 보인다.

이 장면이 이 작품의 성격을 말해준다. 가방으로 상징되는 여성 시청자의 전통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이라는 새롭게 대두된 욕망까지 아우르는 작품인 것이다. 미숙하고 돈 없는 여성 사원을 감싸주면서 가방까지 주는 상사는 남성의 역할이었는데 여성으로 대체한 것이 페미니즘의 흐름이다. 명품가방을 클로즈업한 것은 전통적인 여성의 욕망이다. 남성 대상 작품이라면 명품가방 클로즈업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여성 욕망의 과거 버전을 안고 가면서 페미니즘 신조류를 반영한다. 제목 ‘WWW’는 우먼들로도 읽힌다. 그 우먼들이 첨단 정보기술(IT) 업종을 주도하는 임원들이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냉철하고, 윤리적이다. 청문회에서 거짓말도 안 하고, 회사에서 책임도 회피하지 않는다. 앙숙이 팀장으로 오자 흔쾌히 팀원으로 합류할 만큼 쿨하다. 후배에게 ‘빽’ 주고 ‘빽’도 돼준다. 동료가 피해를 당하면 의리로 함께한다. 남성사회를 전복한 여성 주도의 세상. 페미니즘 물결이 드라마를 바꾸고 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