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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한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연료봉을 교체하며 재가동을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고,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방송에는 연일 군사전문가들이 나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과 대비책을 논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그러던 중 1994년 6월 15일 김일성 주석과 만나 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의 긴장을 완화시켜 준 미국의 정치인이 있었다. 땅콩과 면화를 재배해 돈을 벌어 ‘땅콩장수’ ‘땅콩농부’로 불렸던 민주당 출신의 미국 제39대 대통령인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지미 카터)다. 카터는 평양에서 핵시설 동결과 사찰을 재개하고 미·북 고위급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김 주석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카터가 재임 이후에 한반도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줬다면, 재임 중이던 1978년 10월 14일에는 미국의 농산물과 맥주시장의 흐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는 데 영향을 줬다. 바로 미국 내 맥주 자가 양조(홈브루잉)를 합법화하는 조치였는데, 이는 1919년 금주법이 시행된 이후 60여 년 만이었다. 물론 2013년 7월 1일 미시시피주가 자가 양조를 합법화할 때까지 35년이란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지만, 이 조치는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자가 양조를 합법화하는 초석을 놓았다.

자가 양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여기에서 경험과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들에 의해 기존 대형 맥주회사들과 달리 새로운 발상으로 도전하는 맥주회사가 등장했다. 홈브루어들은 집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그동안 상업맥주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맥주들을 선보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라거 일색이던 소비시장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영국에서 인기를 끌다가 시들해진 IPA를 비롯해 다양한 에일이 만들어져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맛이 가벼운 라거 외에도 많은 홉과 맥아로 만든 진한 향의 맥주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젊은 층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크래프트 비어는 오늘날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맥아를 만드는 보리 외에도 맥주에 들어가는 홉을 재배하는 농장들이 활성화돼 농가의 재배품종 다양화와 수입구조 다변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는 농촌에서만 보이는 변화가 아니었다. 자가 양조에 대한 규제철폐는 미국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1979년에 90개가 채 되지 않던 브루어리의 숫자가 2000년 1566개, 2018년에 7450개를 넘었다. 또 2018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맥주 총생산량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지만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오히려 생산량이 4.0% 증가해 전체 맥주 생산량에서 13.2%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미국의 맥주시장 전체 매출액인 1142억 달러 중 276억 달러로 24% 이상을 차지했고 조금씩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양조협회(Brewers Association) 자료에 따르면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2017년 미국에서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와 762억 달러의 경제적 기여를 했다.

카터는 2015년 8월 23일 암 투병에 대해 인터뷰하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그해 12월 6일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올해로 95세가 된 카터는 자신이 양지로 끌어낸 홈브루잉을 통해 성장한 크래프트 산업을 바라보며 뿌듯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