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선의 ‘삼척항 정박’ 사태가 접입가경이다. 군 당국의 경계 실패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 군 차원을 넘어 정부 차원에서 ‘의도적 또는 조직적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증폭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북한 어선이 동해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채 발견된 직후 해양경찰청 보고로 정확한 실상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 17일 군의 ‘엉터리 발표’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 뒤의 대응까지 종합하면, 북한을 의식해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신고한 어민의 증언과 시민의 사진 등에 근거한 언론의 적극적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흐지부지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해경의) 상황보고서가 있다. 청와대, 합동참모본부 등은 (사건 당일)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해경 상황센터가 사건이 발생한 15일 오전 6시 50분에서 19분이 지난 오전 7시 9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청와대 국정상황실, 국가위기관리센터 등에 북한 어선이 정박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했다. 그런데도 군은 이틀 뒤인 17일 사건을 첫 브리핑하면서 “북한 어선을 삼척항 ‘인근’에서 접수했다”고 엉뚱한 발표를 했다. 고 대변인은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 주로 쓰는 말로 내용을 바꾸거나 축소하려 했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인근’과 ‘부두’는 누가 봐도 다른 표현인데 정확성이 생명인 군이 이런 애매한 용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무엇보다 국민의 상식적 언어 감각에 따르더라도 ‘삼척항 인근의 접수’는 부근 바다에서 인계받았다는 뜻이다. 이틀 전에 해경이 상세한 보고를 한 것을 군이 몰랐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17일 국방부 브리핑 때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배석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일련의 대응이 청와대와 조율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군 일각에서 “청와대가 발표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고도 군에 책임을 몰아가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국면에 ‘귀순’사태가 악영향을 미칠 우려 때문에 은폐·왜곡을 시도한 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감사원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이 직접 나서 청와대의 책임 여부를 분명히하고, 국회 차원에선 국방위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실시해 엄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