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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세상을 바꾼 인터넷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발단은 1957년 인류 첫 인공위성인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였다. 큰 충격을 받은 미국은 이듬해 국방부 산하에 고등연구계획국(ARPA)을 설립했다. ‘기술적 진보로 적을 놀라게 한다’는 취지대로 획기적인 국방 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았다. 핵전쟁 같은 비상시에도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내부 통신망 알파넷(ARPAnet)이 그중 하나로, 인터넷의 원형이 됐다. 이후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 이름을 바꿔 숱한 기념비적 기술을 발굴해낸다.

위성을 활용해 핵잠수함 위치를 파악하도록 개발한 GPS는 이제 차량 내비게이션 등으로 일상화됐다. 병사들의 정보 습득을 위한 음성 지원 프로그램은 애플의 ‘시리’로 발전했다. 자율주행차·마우스·드론·터치스크린·탄소섬유 기술도 DARPA에서 나왔다. 미국 주도의 정보기술 시대를 연 또 하나의 계기가 ‘문샷싱킹’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는 달에 간다”고 선언했다. 달을 더 잘 보려고 망원경 성능 경쟁을 할 때 달 탐사선을 만들겠다는 혁신적 발상이다. 대다수 실리콘밸리 IT 리더는 그걸 지켜봤던 ‘문샷 키드’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19일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발표했다. 뜬구름 잡는 구호들 속에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알키미스트(Alchemist)는 오래전 비(卑)금속으로 금을 만들려 했던 연금술사다.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어도 그 과정에서 근대 화학 발전의 씨앗을 뿌렸고, 새로운 실험 방식·기구도 개발했다. 정부는 이제까지 풀지 못한 산업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술사 방식을 끌어왔다. ‘융·복합’과 ‘실패 용인’이 키워드다. ‘100m를 7초에 주파하는 로봇 슈트’ 등 17개 후보 과제도 공개했다. 경쟁을 통해 최종과제로 선정되면 7년간 300억 원 안팎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한다. 기본 얼개는 DARPA를 벤치마킹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일본도 최근 ‘문샷 연구·개발(R&D)제’를 도입해 우주 엘리베이터 등에 도전하고 있다. 문제는 관료가 주도하는 방식이다. 실패 책임을 묻지 않는다지만, 성과 없는 일에 돈 쓰면 나중에 문책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을 만드는 건 기술 아닌 시간’이라고 했다. 오래 축적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도 나온다. DARPA 성취의 저변을 읽지 않고 겉모습만 취해선 성공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