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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이념화한 ‘적폐청산’ 내세워
전방위로 벌인 수사 지속 의지
‘정치 보복’ 논란 아랑곳 않아

‘정권 忠犬’ 총장 많았지만
정치 외압에 정면 항거하기도
“사람에 충성 않아” 검증해야

국어사전은 교조(敎條)를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이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적폐청산’도 이념화한 교조인 것으로 보인다.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어온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제43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관례를 깨며 고검장 아닌 그를 파격 지명한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추켜올렸다. 진보 성향의 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보수 성향인 두 전임 정부를 ‘적폐’로 몰며 ‘정치 보복’ 논란에도 아랑곳없이 전방위로 지속해온 ‘청산 수사’를 임기 종료까지 이어가기 위한 것도 지명의 주요 이유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검찰과 경찰에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한 적폐청산 수사의 결과는 어떤가. ‘적폐 프레임’에 따른 혐의 상당수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행 혐의도, 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의 수사 개입 의혹도 증거를 찾지 못했거나 사실무근이었다. 곽 의원은 “대통령 한마디에 검찰·청와대·법무부가 총출동해 나를 범죄자로 몰았다”며 현직 대통령을 사상 처음 직권남용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이 군·검 합동수사단 구성과 신속·공정 수사를 지시한, 전 정부 때의 국군기무사령부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도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군(軍) 사기만 꺾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의 용산 철거 참사에 대해선, 문 정부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검찰 수사에 은폐·왜곡·외압은 없었다”면서도 “편파 또는 소극적 수사를 했고, 청와대의 개입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앞뒤조차 맞지 않는 꿰맞추기가 오죽했으면, 참사를 수사했던 전·현직 검사들이 “허위 공문서 수준”이라고 했겠는가. 문 정부 출범 직후에 지시된 ‘19개 부처마다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설치’, 그에 따라 무분별하게 자행된 징계 등은 공무원들이 후일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상관 지시를 모두 녹음이나 메모로 남기는 풍조까지 초래했다.

검찰총장은 정부의 외청장 중에서 유일한 장관급이다. 사실상 행사하는 권력은 다른 장관들보다 더 크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기본인데도 요원하다. ‘정권 충견(忠犬)’ ‘정치 시녀’ 등의 비판을 자초해온 역대 총장이 적지 않다. 윤 후보자를 두고도 한국당은 “야권 인사들을 향한 강압적 수사로 ‘문재인의 사람’임을 몸소 보여줬다. 청와대 하명에 맞춰 이제 얼마나 더 크고 날카로운 칼이 반(反)문 인사들에게 휘둘러질 건가” 하고 우려했다. 바른미래당은 “전형적인 코드 인사로 검찰의 독립 아닌 종속을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그런 점을 다른 흠결 요인과 함께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윤 후보자는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을 맡으며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고 반문한 적도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역대 검찰총장 중에는 대통령의 부당한 수사 개입에 정면 항거한 인물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김익진 제2대 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뜻인 측근 불기소를 거부해 서울고검장으로 강등 좌천되는 전무후무한 조치에도, 정치적 압력으로 검사직에서 쫓겨나는 악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김종빈 제34대 총장은 또 다른 예다. 북한 김일성 생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찬양’ 글을 남기고,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이라고도 한 강정구 교수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요구에 저항하며 취임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검찰의 정치 중립 의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민은 정치가 수사에 개입하고 권력의 외압에 굴복하는 검찰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2016년 어느 강연에서 ‘결국 노무현 대통령 주문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털어놓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국가보안법 적용을 사실상 하지 않거나 완화하자는 입장을 내게 전했다. 실정법을 두고 그럴 순 없었다”는 요지다. 국회의 윤 후보자 검증 초점도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교조’ ‘직·간접적 수사 개입’ 등을 실제로 어떻게 다룰 것인지여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