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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정치부장

막말의 심리 ‘더닝 크루거 효과’
무능력해서 자신 능력 과대평가
朴 탄핵 이후 한국당 심리 상태

거친 입으론 지지층 확대 어려워
품격 등 보수 가치 버려선 안 돼
文 정부 비판할 거리 차고 넘쳐

막말은 비판을 받지만,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크다. 비속어나 거짓말, 거친 말로 적이나 상대방을 공격할 때 느끼는 감정적 카타르시스와 우월적 존재감을 공유하면서 유대감이 더욱 공고해진다. 정치인은 열광적 지지가 뒤따르고 영웅 심리를 만끽할 수 있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막말은 막말로 상대하는 작용-반작용의 악순환을 부르면서 막말 정치는 공수 양측 모두를 집단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는 일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말 심리를 ‘더닝 크루거 효과’로 분석했다. ‘무지에 대한 무지’(unknown unknowns)로 불리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 무능력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이론이다. 노이즈 마케팅, ‘관종병’, 존재감 과시 등 여러 말이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 패배, 지방선거 참패 등 정치적 무능력과 패배감에 빠져 있는 자유한국당의 막말 심리 상태를 가장 잘 분석했다고 본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1일 “아무것이나 막말이라고 하는 그 말이 막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비판한 민경욱 대변인을 옹호했다. 불과 얼마 전 “항상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해 심사일언(深思一言)해 달라”고 입단속을 당부하며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던 황 대표가 입장을 바꾼 셈이다. “야당 당수가 마땅하고 옳은 말 하는 자당 싸움꾼만 골라 스스로 징계하는 경우를 저는 듣도 보도 못했다”(김문수 전 경기지사), “좌파와 싸우려면 온몸을 던져도 모자랄 판에 말 한마디 하려 할 때마다 징계를 걱정하면 싸움이 되겠냐”(김진태 의원) 등 비판을 막말로 모는 것은 또 다른 반(反)야당 프레임이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좌파독재, 세금 퍼붓기, 내년 총선에만 골몰하는 오만방자한 정부 등의 표현은 정치적 언어이지, 막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당 한 의원은 “(막말이) 국민의 귀에 속속 들어박힌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 세계에는 막말 집권자들이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속어와 욕설, 비아냥에 거짓말 등 ‘막말 끝판왕’이었지만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건 미국 얘기이고, 한국사회에서 막말은 순간적 쾌감을 줄진 몰라도 권력을 주지는 않는다. 특히 보수는 막말로 집권할 수 없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당은 황 대표가 민생투쟁 대장정을 시작한 5월 둘째 주 당 지지율은 2017년 탄핵 이후 최고(34.3%)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문 대통령 지지자 혐오 발언으로 상승세가 꺾였고, 막말 논란에 휩싸이며 6월 첫째 주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0%대(29.6%)로 주저앉았다. 한국의 유권자 유형을 대략 분류하면 확실한 보수(20%)와 중도 보수(20%) 등 보수 성향 유권자는 40%가량이다. 한국당 지지율을 보면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태극기’는 막말로 모을 수 있지만, 나머지 20%는 막말로 모을 수 없다.

사람의 말은 인격을, 조직의 말은 품격을, 나라의 말은 국격을 나타낸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집권을 하든, 성공을 하든 할 수 있다. 잘하는 말은 신념과 원칙, 철학이 담긴 말이다. 그래야 감동을 주고 국민의 마음도 얻게 된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당 대변인 시절, 1분짜리 성명서를 만들기 위해 대여섯 시간을 준비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없었기에 군사정권하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의 말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한국당 막말 논란은 여권이 유발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상대방 프레임에 걸리면 절대 못 이긴다. 양비론을 유발하는 이전투구로는 현 권력을 못 넘는다. 한국당은 싸움을 하더라도 명예, 존중, 배려, 헌신 등 보수의 품격을 버려선 안 된다.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 정책 실패, 도덕성과 적폐청산을 앞세운 국민 편 가르기,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세금 퍼붓기, 대의기관을 무시한 포퓰리즘 정책 등 현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팩트는 차고 넘친다. 막말을 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내공이 강하면 말초적 표현에 기댈 필요가 없다. 품격과 절도 있는 말로 상대를 비판한다면 수권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윈스턴 처칠처럼 유머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