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물려가며 기업을 할 수 있는 ‘가업(家業) 승계’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족쇄가 강해 장수기업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여당이 11일 중소·중견기업의 가업 상속을 돕겠다고 세제개편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가업 승계를 부(富)의 공짜 대물림으로만 보는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기술·고용·경영의 승계 및 제2 창업이라는 방향으로의 과감한 발상 전환이 필요한데, 기존 정책의 ‘찔끔 조정’ 시늉에 그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0.1%를 위한 상속세 개편”이라는 시민단체 등의 반(反)부자·반기업 정서에 또다시 굴복한 셈이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6.6%의 2배에 달하고, 최대지분을 상속할 때는 65%까지 치솟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징벌적 세율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로 1997년부터 매출 3000억 원 미만, 10년 이상 경영 중소·중견기업에 최대 500억 원을 공제해주는 가업 상속공제가 시행 중이다. 대신 업종·자산·지분·고용 유지 등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당·정은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고, 업종 변경 범위를 ‘소분류’에서 ‘중분류’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0% 이상 자산처분 금지, 정규직 근로자 수 유지 조항 등을 일부 완화하곤 그걸로 끝이다.

창업주가 대표인 중견기업 가운데 60세를 넘긴 곳이 60%에 육박한다. 상속세 공포에 직면한 기업인들 사이에선 회사를 미리 팔아 현금으로 증여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상속세가 없는 싱가포르 등으로 옮기려는 사례도 있다. 손톱깎이 세계 1위 기업 쓰리쎄븐은 창업주 사망 후 상속세를 마련하느라 기업을 팔았다가 자녀들이 가까스로 찾아왔다. 국내 1위 종자기술 업체 농우바이오, 세계 1위 콘돔업체 유니더스도 경영권을 넘겼다. 100년 이상 장수기업이 즐비한 유럽이나 일본·미국 등에선 기업의 연속성 시각에서 접근한다. 규제 아닌 지원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아예 상속세를 없앴다.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 세율을 낮추고, 사후관리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한다. 숱한 업종이 사라지고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기에 과거 답습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시대착오다. 가업 승계를 저해하는 세금 규제를 철폐하는 걸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