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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범 썸랩 대표

“사랑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요즘 청년들은 연애나 결혼이 힘들다. 모든 관심은 취업에 쏠려 있어 연애나 결혼 생각이 사치처럼 여겨질 정도다. ‘경력단절’ ‘독박육아’처럼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해진 ‘출산’은 더더욱 어렵다.

청년들에게 요즘 또래들이 생각하는 결혼 관련 화두(話頭)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비혼’을 꼽는다. 청년들에게 비혼은 유행의 첨단이고, 결혼이나 출산을 말하는 사람은 조선 시대에서 툭 건너온 사람처럼 여긴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남녀 2464명을 대상으로 결혼 필요성을 물었더니 여성 71.2%, 남성은 49.5%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비혼이 마치 ‘신드롬’ 같다.

사실 청년들이 연애나 결혼을 생각할 만한 여건은 아니다. 올해 1∼4월 월별 청년 실업률만 봐도 8.9%, 9.5%, 10.8%, 11.5%로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급속히 치솟고 있다. 이를 보면, 청년들이 ‘썸’을 자주 언급하는 걸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마음속에 움트는 ‘로맨스’는 있지만, 서로에게 강한 책임감이 따르는 연애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경제적·감정적 소비가 심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과거에도 연애 시작 전 알듯 모를 듯 남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기간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썸이 주목받았던 시대도 없었다.

연애나 결혼도 안 하는데, 출산은 말해 무엇할까.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2명의 부부가 채 1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다.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인 멸종’도 비현실적인 얘기만은 아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인구학 교수는 최근 발간된 책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것인가와 내가 살 것인가 가운데 전자를 택하면 출산으로 이어지고 후자를 우선시하면 출산을 미루게 된다”면서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정년 연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정부 인구구조개선 대응 태스크포스(TF)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현재의 ‘정년 60세’가 시행된 지 3년 만이다. 가뜩이나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책으로 일자리 감소 직격탄을 감내해야 하는 청년들은 걱정이 크다. 연애, 결혼, 출산 등 이른바 ‘N’을 포기한 마당에 일자리 경쟁이 급격히 강화되는 위기에 또 한 번 내몰리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들이 썸이라도 타면서 유지해온 연애, 결혼에 대한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 야멸차게 훅 불어 꺼버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정년 연장 논의 때 반드시 신구(新舊) 세대 간 갈등이 빚어지지 않도록 경제 상황과 기업 여건을 철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20대 인턴 근로자의 말이 귀에 맴돈다.

“연애요? 소개팅조차 안 해요. 인턴 처지에 누군가를 만나기엔 불확실성이 크잖아요. 그런데 연애는 하고 싶어요. 제발 마음 놓고 사랑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b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