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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욱, 노화랑서 개인전

“한눈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 희박한 무채색 색채와 불분명한 윤곽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은 익숙한 조선 시대 백자 달항아리의 기형이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모종의 물체가 떠오르듯 캄캄한 기억의 지층 속에 깊숙이 잠겼던 흐릿한 이미지를 발굴해내듯 그렇게 백자의 기형은 홀연히 출현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최영욱(사진)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의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1년 빌 게이츠 재단이 건물 준공과 함께 작품 3점(카르마 시리즈)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최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노화랑에서 12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최근작 20점이 걸린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달항아리 예찬론을 펼쳤다.

최 작가는 달항아리를 독창적인 화법으로,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빙열(氷裂·도자기 표면의 균열)에 특유의 음영과 손때까지 표현한 그림은 언뜻 극사실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작가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작가노트에 “사람들은 나를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로 안다. 하지만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내 삶의 이야기,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았고 찾았다”고 적고 있다.

최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 작업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한때 유명 입시 미술학원 강사였다. 그러나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그로서는 본업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결국 그는 작가로서 생존경쟁이 치열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어느 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렀는데 한국관에서 우연히 만난 달항아리가 당시의 저처럼 처량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이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작품 제작과정은 도공이 항아리를 빚는 작업과도 같다. 먼저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연하게 드로잉한 뒤 제소(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재료)에 백색 돌가루를 섞어 형태를 만든다. 수십 번, 수백 번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고 칠하기를 반복, 두께를 만든다. 형태가 만들어지면 표면 흔적들을 세세하게 추적하듯 그려나간다. 유약이 몰려 만들어진 듯한 옅은 산수화가 그려지고 작은 티 같은 색점들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빙열을 그린다. “달항아리 작업은 나를 찾는 과정입니다. 삶의 질곡과 애환, 웃음과 울음, 그리고 우리 마음 밑바닥의 측은지심 등 꾸밈없고 단순한 형태와 색감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