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6월은 살구철이다. 대개 중·하순에 출시됐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다. 최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EPIS)이 살구를 6월의 제철 농식품으로 선정한 배경이다. 국내 유실수 중 가장 일찍 나오는 것이 살구다. 살구와 닮은 자두는 7∼9월이 제철이다.

살구는 밤·대추·복숭아·자두와 함께 귀한 5과(五果)로 통한다. 우리 선조는 몸이 힘들면 봄에 도라지차, 여름에 살구·복숭아차, 가을에 은행(볶은 것)차, 겨울에 귤껍질차를 즐겼다. 살구란 명칭이 ‘개를 죽인다’는 뜻인 살구(殺狗)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예부터 민간에선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를 먹으면 독성이 풀리고, 개(狗)가 살구를 먹으면 죽는다고(殺) 여겼다. 살구란 과일 명은 ‘살(솔)고’에서 나왔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여기서 살은 ‘태양(햇살 등)’, 고는 ‘사람’을 뜻한다.

살구나무는 학문과 의학의 상징이기도 했다. 공자가 학문을 가르쳤다는 행단(杏亶)은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다. 중국의 고서 장자(莊子)에는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강의할 때 살구나무로 만든 단상(杏壇) 위에 즐겨 앉으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도 “우리나라 사람이 공자의 사당 뒤편이나 앞뜰에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의사들을 흔히 ‘행림(杏林)’에 비유한다. 이는 중국 신선전(神仙傳)에 등장하는 동봉(董奉)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오나라의 명의 동봉은 병을 고쳐주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중병 환자에게는 다섯 그루, 가벼운 병 환자에게는 한 그루의 살구나무를 뒤뜰에 심게 했다. 그 후 살구나무가 숲(행림)을 이뤘고, 이 살구를 팔아 얻은 곡식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줬다. 의학계를 ‘행림(杏林)’, 실력이 뛰어난 의사를 ‘행림고수(杏林高手)’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서다.

살구는 자두와 속(屬)은 같지만 종(種)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표면에 털이 있으면 살구, 없으면 자두다. 살구의 과육 색깔은 오렌지색이지만 자두는 황색·적색 등 다양하다. 살구는 껍질도 과육 색과 같은 오렌지색이다. 살구는 즙이 자두보다 적고 맛이 단순하다.

한방에선 살구씨를 약재로 쓴다.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어서다. 한방명은 행인(杏仁)이다. 서양에선 살구씨 성분인 아미그달린을 ‘비타민 B17’이라고 부른다. 과거엔 암환자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살구씨를 즐겨 먹은 미국 나바조 인디언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근거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살구씨가 함유된 의약품의 시판을 불허했다. 살구씨에 유독한 청산 성분이 극소량이지만 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살구씨는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는 남성에게도 권장된다. 보신탕에 살구씨를 넣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살구가 건강에 이로운 것은 노란색 식품에 많은 베타카로틴(말린 살구 100g당 5㎎)과 붉은색 과일에 풍부한 라이코펜이 모두 들어 있어서다. 둘 다 노화와 만병의 근원인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 성분이다. 칼륨 함량이 높은 것(말린 것 100당 1300㎎)도 살구의 영양상 강점이다. 고혈압 환자에게 살구가 권장되는 이유는 칼륨이 혈압을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살구의 100g당 열량은 28㎉다. 이 정도라면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별 부담 없이 먹을 만하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