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정은(오른쪽)이 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에서 열린 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팬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정은 US女오픈 우승

승부처 11번홀 버디 선두나서
12번홀 연속 버디로 2타차로

“헤이니 한국비하 발언 몰랐다
나흘간 우승 향해 최선 다해”

작년 퀄리파잉스쿨 수석 통과
몸 불편한 부친 딸 위해 헌신
가족생계 위해 골프채 잡아

이정은(23)이 신인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제74회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 달러) 정상에 올랐다. 이정은은 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파71)에서 열린 US여자오픈 4라운드에서 1언더파를 보태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로 우승했다.

이정은은 지난해 11월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LPGA투어 출전 자격을 획득했지만, 미국 진출을 망설였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부친 이정호 씨는 이정은이 4살이었을 때 덤프트럭을 몰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장애인용 승합차를 직접 운전하며 딸의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등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이정은은 늘 먹고 사는 걸 걱정했다. 1996년생인 이정은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3년간 골프를 배웠지만 그만뒀고, 중학교 재학 시절 본격적으로 골프를 익혔다. 골프채를 다시 잡은 건 ‘레슨 코치가 되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미지 크게보기 이정은(왼쪽)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유소연에게 안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정은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2학년 때 베어크리크배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그해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됐으며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에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광주유니버시아드를 마친 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준회원 테스트에 합격했고 2016년 KLPGA 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정은은 2017년 KLPGA 투어 상금과 대상, 다승, 평균 타수 등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베스트 플레이어, 인기상 등까지 손에 쥐었다. 2018년엔 한국과 미국 활동을 병행하며 상금 9억5000만원을 벌어 1위, 평균 타수 1위(69.87타)를 차지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족의 든든한 격려가 있었기 때문. 그의 부모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는 등 외동딸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친 이정호 씨는 2012년과 2013년 장애인전국체전 탁구 복식에서 금메달, 2017년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정호 씨는 “(US여자오픈) 3라운드가 끝난 뒤 ‘엄마, 퍼트가 잘 안 돼요’라고 투정을 부리더니, 끝까지 잘 버텨줘 고맙네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주은진 씨는 “정은이가 (미국에서) 일정한 거처 없이 대회 때마다 숙소를 옮겨 다니기 때문에 변변한 반찬 하나 보내지 못했다”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이런 큰 선물을 해주니 고맙고,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이정은은 시상식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정은은 “지금까지 우승한 어떤 대회보다 느낌이 다르다”며 “(힘들게) 골프를 했던 것이 생각나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정은의 말을 영어로 옮기던 통역도 함께 눈물을 흘렸고, 시상식을 지켜보던 갤러리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정은은 그러나 곧 재치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유도했다. 이정은은 ‘100만 달러 우승 상금으로 무엇을 하겠느냐’는 물음에 “제가 좋아하는 게 한국 라면이고, 우승하면 꼭 라면을 먹겠다고 마음 먹었다”면서 “오랜만에 라면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은은 이정은6로 표기된다. 동명이인이 6명이나 된다. 그런데 US여자오픈을 앞두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코치였던 행크 헤이니(이상 미국)가 라디오방송에서 “올해 US여자오픈에서 한국인이 우승할 것”이라며 “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 6명의 이름을 댈 수가 없고, 대신 이(Lee) 씨인 선수라 하겠다”고 말해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한국선수, 그리고 이정은‘6’를 비꼰 것.

이에 대해 이정은은 “저는 영어를 잘 몰라서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우승을 위해 나흘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LPGA 선수로서 영어로 말씀드릴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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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은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에 2타 뒤진 6위였지만 역전우승을 연출했다. 어려운 코스세팅 탓에 선두권은 타수를 잃었고, 이정은은 침착하게 타수를 지키면서 순위를 높였다.

승부처는 11번 홀(파3).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1타 차 선두로 나서더니, 12번 홀(파4)에서도 버디를 낚아 순식간에 2타 앞선 선두로 달아났다. 11번 홀은 이번 대회 4일 동안 그린 적중률 46%, 샌드 세이브 24%에 불과할 만큼 공략하기가 까다로웠다. 이정은은 11번 홀에서는 159야드에서 7번 아이언으로 친 샷을 핀 1.5m에, 12번 홀은 96야드를 남긴 어프로치 샷을 핀 1m에 각각 붙였다.

기세가 오른 이정은은 14번 홀(파4)에서 5m 버디 찬스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15번 홀(파5) 에서 그린 앞 30야드 남기고 친 세 번째 샷을 1.5m 붙인 뒤 성공시켜 8언더파가 됐고 2위 그룹과의 격차는 3타로 벌어졌다.

이정은은 그러나 16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하더니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도 2m 남짓한 파 퍼트를 잇따라 놓쳐 격차는 1타까지 좁혀졌다. 14번 홀까지 5언더파를 치며 이정은의 유일한 경쟁자로 남았던 부티에는 15번 홀에서 1m 남짓한 결정적인 버디 퍼트에 실패, 공동 선두기회를 날렸다. 부티에는 버디를 해야만 연장전에 합류 할 수 있었던 18 번 홀에서는 무리하게 그린을 공략하다 벙커에 빠트렸고, 3퍼트마저 범해 더블보기로 3언더파로 이날 4타를 잃은 류위와 함께 공동 5위에 머물렀다.

부티에의 마지막 홀 결과에 따라 연장 돌입 여부가 걸리자 이정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퍼팅 연습장에서 결과를 기다렸지만 우승 트로피는 이정은의 품에 안겼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