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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 / 이창복 지음 / 김영사

‘팔십을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아니, 죽음에 이르는 길이 더 무섭다. 내 삶이 죽음을 맞이하기에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 쓴 글의 한 대목이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살 만큼 살았으니 두렵지 않다는 이들도 있으나 진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려우니 외면한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까닭이다.

누구나 알면서도 평소 생각하지 않는 진실은, 삶 없이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 없이 삶은 없다는 것. 인간은 죽어가면서 삶을 새롭게 발견한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는 이들이 많다. 진구렁에서 뒹굴었을망정 삶이 참 아름다웠노라고. 나의 나날들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야 했다고.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독문학계 석학으로 다방면의 문화예술 영역을 아우르는 연구·저술 활동을 통해 융합 미학의 영역을 개척했다. ‘죽음을 노래한 불멸의 명작’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번 책에서도 서양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종교, 철학, 역사를 두루 꿰뚫는다.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그 시대의 사조에 어떻게 수용돼 인간의 삶을 정화시켰는지 살폈다. 또 각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들을 통해 인간의 삶은 어떻게 성숙한 죽음을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기독교 성서를 근거로 실낙원 이후에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의 상호 작용 관계가 심오한 문제로 나타난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신학은 삶이 신의 선물이고 죽음은 극복해야 할 인류의 적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기 때문에 부활한다는 종교적 희망과 내세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다. 철학은 삶과 죽음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삶의 평온을 주고 죽음의 공포를 없애준다. 문학은 추상적이고 무서운 죽음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형상화해서 우리로 하여금 삶 속에서 간접 체험하도록 이끈다. 죽음은 삶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비극적이지만 예술작품에서 형상화될 때 신비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며 인생에 파멸과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삶을 성숙하게 만드는, 이른바 니체가 말하는 ‘삶의 자극제(Stimulans des Lebens)’로 작용한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결국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귀중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각 속에서 삶을 긍정하며 죽을 때까지 인격 완성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에필로그다. 삶의 환경이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지만 ‘선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며,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것. 이는 서문에서 소개한 김수환 추기경의 말과 통한다. 김 추기경은 세상과 작별하며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는 자는 울지만 주위 사람들은 웃고, 죽어가는 자는 웃지만 주위 사람들은 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744쪽, 3만3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