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나 일본 여행을 할 때 아마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 아닐까 한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이는 스미마셍을 매번 연발하는 일본인들은 어쩌면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것 같아 간혹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지나가다 옷깃만 스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스미마셍 안에는 타인에 대한 민폐를 극도로 꺼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나도 일본어에 능숙하진 않지만 가장 자신 있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스미마셍이다.

얼마 전 나는 혼자 도쿄에서 4박 5일을 보내게 됐다. 하루에 한 동네씩만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느린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도쿄(東京)로 떠나기 전 오사카(大阪)에 사는 친구에게 넌지시 연락했더니 마침 일본인들의 10일 연속 휴가가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 테니 각오를 하라는 답장이 왔다. 어딜 가든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한편 긴장감을 내려놓은 도쿄의 민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한국과 너무 비슷해서 재미없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비슷하지만 너무 다르다고 하는 일본 수도의 민얼굴이 궁금했다.

도쿄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내 집 마당 같은 깨끗함이었다. 첫날 묵은 숙소가 있던 도쿄의 외곽 마을은 집마다 꽃과 나무가 심겨 있는 아름답고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써놓은 경고문이라든지, 행여 힘들게 가꾼 꽃을 누군가가 망칠까 걱정돼 높게 쳐놓은 울타리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 사람이 걸을 틈 없이 세워놓은 주차행렬 또한 없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주차할 공간을 확보하고 증명하지 못하면 차를 살 수 없는 일본의 법률 때문이라고 한다. 차는 그렇다 쳐도 그토록 깨끗한 거리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인파로 혼잡한 중심, 시부야나 신주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더욱 놀라웠다.

여행 이튿날 시부야 역에서는 마침 새 일왕의 즉위 소식을 전하는 호외를 발행 중이었는데 수많은 신문이 거리에 나부끼는 대신 사람들의 손에 얌전히 들려 있었다. 여행 내내 아이스 커피를 자주 사서 마셨는데 커피를 다 마시고 난 컵을 아무 데나 버릴 수 없어 가방 속에 넣어 온종일 들고 다니게 됐다. 가까스로 발견한 쓰레기통은 깨끗하고 새침한 모습으로 숨어 있곤 했으며 그 위로 넘치는 쓰레기 또한 볼 수 없었다. 모두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깨끗한 거리를 유지하는 힘이었으며 그 불편은 결국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도쿄의 곳곳은 서울과 많이 닮아 있었지만, 서울과는 많이 달랐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라는 일본인들의 스미마셍은 곳곳에 스며들어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깨끗한 거리와 특유의 친절함을 느끼게 해줬다. 너무 많은 것이 넘쳐나며 점점 복잡해지는 도시에서 서로 좀 덜 불편해지기 위한 방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스미마셍이라는 말 속에는 ‘미안합니다’ 그 이상이 담겨 있었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