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철호 애플카인드 회장이 지난 15일 강원 인제군 가리산리에 위치한 자택 앞 텃밭에서 아내 김경희 씨와 함께 고추 모종을 심고 있다. 인제=김호웅 기자 diverkim@

‘애플카인드’ 김철호 회장

한때 학생 수 1만2000여명
유명 입시학원 총책임자에서
자유 만끽하고자 향한 양구

3년전 사과전문회사 설립 후
생사과부터 주스·과자까지
다양한 친환경 제품 생산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는 곳
무한경쟁 도시엔 없는 매력”

“청년 일자리에도 앞장서고파
10명~100명 늘어나는 꿈 꿔”

한때 ‘전설’로 불린 고등학교 입시 학원 ‘글맥학원’의 원장이었다. 경기 일산과 성남 등에 7∼8층 높이의 캠퍼스를 8개 뒀다.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2006년 기준으로 교직원은 700여 명, 학생은 1만2000여 명에 달했다. 그 학생들의 등·하원을 돕기 위해 관광버스 규모의 버스가 매일 40여 대씩 동원됐다. 그해 774명의 학생이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에 진학했다. 특목고 신입생들이 “너도 글맥 출신이야?”라며 첫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김철호(63)·김경희(여·55) 부부는 그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김철호 애플카인드 회장은 과거 본원의 총책임자로, 김경희 고문은 화정 분원의 원장으로 각각 학원을 운영했다. 김 회장은 ‘자습’을 성공의 키워드로 삼았다. 그는 “선생님들이야 화려하게 강의만 하고 나면 그게 끝이지만 학생은 그게 아니다”라며 “자습을 통해 공부한 것에 대한 자기 내면화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맥은 당시 강의 시간보다 자습 시간을 길게 뒀다. 주말에도 언제든지 학원의 빈 강의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부부는 한편 글맥을 공부 외적인 면에서도 특별하게 운영하고자 했다. 단순 공부만 시키는 곳을 넘어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김 회장은 특히 2005년 오페라 ‘투란도트’를 학생 600명에게 무료로 보여줬던 것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김 회장은 “어렸을 적 내가 오페라를 보고 받았던 문화적 충격을 학생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금액 부분에서 고민이 안 됐던 것은 아니지만 며칠을 고민해도 포기가 안 되더라”고 설명했다. 김 고문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김 고문은 미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작품 저작권을 사서 등·하원 버스에 걸었다. 무심결에라도 보고 창의력을 키우라는 뜻이었다.중학 시절 3년을 글맥학원에서 보낸 김기보(29) 씨는 “글맥은 학원이라기보다 학교에 가까웠다”며 “당시 글맥에서 공부하고 울고 웃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30년. 어느 날 김 회장에게 회의감이 찾아왔다. 학원 운영에 스트레스가 많이 따랐다는 김 회장은 일요일마다 산에 오르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곤 했다. 그러다가 김 회장은 “월요일부터 토요일을 일요일만 기다리며 사는 게, 이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원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했다. 아내 김 고문 역시 “굳이 귀농할 필요까지 있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김 회장은 “죽어 있는 삶을 살지 말자”며 아내를,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인제 가리산리로 들어갔다. 2012년의 일이다.

귀농은 김 회장 부부에게 삶의 전환기를 마련해줬다. 삶이 느려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읍사무소만 가도 분위기가 도시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렇게 친절하고 편하게 대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도시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다”라며 “매일 일에 치여 사니까 짜증이 나고 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시라는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는 조금 튀는 아이디어, 행동력 등으로는 별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데, 시골은 약간의 발상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훗날 차릴 사과 산업 이야기에 가닿는다. 그는 “혹시 외롭지는 않냐”는 질문에 “외롭다는 게 결국 인생이 재미없다는 말과 같은 말일 텐데, 재미는 꼭 사람에게서만 찾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자연에서 재미를 찾으니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했다. 김 고문은 “외로움이 좋아질 나이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맛있고 가장 행복한 사과’를 목표로 내걸고 있는 김철호(뒷줄 오른쪽 두 번째) 애플카인드 회장 부부와 직원들. 애플카인드 홈페이지 캡처

그렇게 귀농한 지 4년. 김 회장 부부에게는 다시 한 번 도전의 때가 찾아왔다. 앞서 언급했듯, 사과 산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어차피 삶은 모험 그 자체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 회장에게 모험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노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라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는 특히 사과 산업을 선택한 이유가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시골에 내려와 보니 생각보다 안전한 먹거리가 없어 놀랐다고 했다. 농약을 치든 화학비료를 쓰든 간에 사람의 편의를 위해 먹거리가 오염되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는 “먹거리 산업 전반을 책임질 재량은 없더라도, 사과만이라도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그런 깨끗한 사과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의 이런 결심의 배경에는 썩지 않는 사과 이야기를 소개한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의 ‘기적의 사과’도 큰 요인이 됐다. 그렇게 김 회장은 2016년 3월 ‘행복한 농부, 행복한 사과, 행복한 세상’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둔 사과 회사 ‘애플카인드’를 설립했다.

애플카인드가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곳은 강원 양구다. 19만8347㎡(6만 평) 드넓은 지형에 사과나무 1만5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단일 사과밭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앞으로 33만㎡(10만 평)까지 늘릴 계획이다. 수확 품종은 부사(후지), 홍로, 감홍, 아리수, 시나노 골드 등 다양하다. 김 회장은 이 넓은 농장 중에서도 퇴비사 7272㎡(2200평)를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았다. 2200평이라 하면 축구장(2164평)보다 큰 셈이다. 퇴비사에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한 이유는 다시 김 회장이 애플카인드를 설립한 이유,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맞닿는다. 화학비료 없이 우드칩과 쌀겨·깻묵 등에 효소를 섞어 퇴비를 만들고 6개월을 후숙시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약간의 나무향만 날 뿐, 우리가 아는 보통의 퇴비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후엔 그 퇴비를 직접 먹어보기까지 한다. 김 회장은 “사람이 먹어도 될 만한 걸 나무에 줘야 건강한 사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농장 운영 과정에서 꿈이 하나 더 생겼다고 했다. “농촌에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김 회장은 작년 집 옆에 있던 초등학교가 폐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농촌사회 고령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교육·문화적 혜택이 적고 일자리가 없기에 젊은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면서도 “자연 속에서의 행복 등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김 회장은 ‘그렇다면 애플카인드가 젊은이들이 농촌에 올 만한 이유가 돼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애플카인드가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정말 좋은 직장이 된다면, 농촌도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은 것이었다. 실제 지금 애플카인드에는 7명의 젊은 사원(20대 중반∼30대 초반)이 재직 중이다. 김 회장은 “앞으로 청년이 10명, 100명으로 늘어나는 꿈을 꾸고 있다”며 “애플카인드가 농촌을 살리는 기업이 되고,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업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애플카인드가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넘어 청년의 농촌 일자리 제공처 역할까지 해낸다면 우리 사회에도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인제=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