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악재가 켜켜이 쌓여 있는 현실에서 정국(政局)의 극심한 대치가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군소 야당 3개를 끌어들여 온갖 무리수까지 동원해 선거제도 일방 개편 등 ‘패스트트랙 4여(與)’ 체제를 만들면서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강경 대응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국 경색을 풀려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정확하게 짚고, 결자해지(結者解之) 의지는 물론 야당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세가 대전제일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발상부터 독단(獨斷)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KBS 대담 프로를 통해 대북 식량 지원을 논의하자며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식량 지원 논의부터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지만, 5당 대표라는 형식도 적절치 않다. 그 자체로 한국당에 대한 ‘격하’와 마찬가지다.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한 선거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 등 3개 안건에 단일 보조를 맞추는 정당들은 ‘범여’ 정당들이다. 바른미래당은 전위대 노릇을 했고, 정의당은 후보 단일화를 했을 정도로 준(準)여당이며, 호남 중심의 민주평화당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문 대통령은 5당 위의 초월적 지도자임을 확인하고, 대화 명분을 쌓으며, 한국당은 국정 경쟁자가 아니라 정치권의 5분의 1에 불과함을 과시하는 1석3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정치 초보자라도 알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상황보다 더 근원적 문제는 문 대통령이 야당 주장을 이해하고 양보할 의사가 있느냐이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럴 기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한국당이 반대하면 대북 식량 지원 중단을 선언할 용의가 있는가.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보 해체를 철회할 것인가. 최근 청와대 간담회에 초청된 각계 인사들이 완곡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고언(苦言)을 했으나 이벤트 이상의 효과는 없어 보인다. 비공식 발언이긴 하지만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등으로 국정 난맥을 공무원 탓으로 돌린 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야당을 들러리로 삼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설사 1 대 1 회동이 이뤄져도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난맥을 공무원 탓, 국제 환경 탓, 야당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잘못을 흔쾌히 시정하며,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과감히 타협하겠다는 진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