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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5월 8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이 ‘어버이’의 어원을 알아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장은 뜻밖으로 간단명료했다. 어머니의 첫 글자 ‘어’에 아버지의 둘째 글자 ‘버’를 합친 다음,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 ‘이’를 붙여 만든 말이란 거였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비슷한 설명을 베껴 쉽게 작성해 내놓은 것이다. 선생님을 쌤이라 하고, 생일 파티를 생파라고 하는, 사자성어나 축약어 만들기에 길이 든 신세대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어버이란 말은 그처럼 얇고 가볍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지난해 5월 11일 자 문화일보 ‘어원 이야기’에서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부(父)’의 ‘어비’와 ‘모(母)’의 ‘어지’가 결합된 ‘어비어지’가 줄어든 어형설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는, 아비의 쌍둥이 말 ‘어비’와, 어미를 가리키는 ‘어지’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어비의 제2음절 모음 ‘ㅣ’가 떨어져 나가 ‘업어지→어버지’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 어버지의 끝 글자 ‘지’는 원래 ‘ㅈ’이 아니라 반치음(ㅿ)이었는데, 소실돼 15세기 말에는 모음만 남아 어버이로 바뀌었다는 어원론이다.

이렇게 보면, 어버이란 말의 나이는 적어도 500살이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한자어 부모에 밀려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개칭되면서 이 말이 되살아났다. 어머니날은, 1913년 미국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마더스데이로 정해 기념한 이후 전 세계로 파급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해마다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까지 기념해 오다가, 1973년 3월 30일 자 대통령령 제6615호로 어버이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노인복지법(제6조 2항)과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어버이날이 명시돼 있다. 장애인의 날(4.20)과 어린이날(5.5) 및 노인의 날(10.2)과 함께 보건복지부가 행사를 주관한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님 아니었으면 이 내 몸 없을 것이니…’. 조선 중기의 문신 주세붕의 ‘오륜가’ 6수 중 제2편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하늘 같은 은혜에 한 송이 카네이션으로 감사드리는 자녀들도, 그 마음 받는 어버이들도 이번엔 그리 기쁘지가 않다. 경제는 성장 절벽, 사회는 인구 절벽, 청년은 취업 절벽 속에 맞는 어버이날이기에.